내 발은 아직도 허공에서 발을 허우적이며 공기를 가르고 있었다.
호수에서 내 몸이 부양하며 호수전체를 내려봤을 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이 호수에서 출발한 빛들이 전방위로 퍼져나갔다가 다시 모여들고 있었는데 그 속에는 많이도 낮익은 모습들이 보였다.
그 모습들은 증기로 피어오른 목욕탕에서 손을 문질러 보았던 거울속의 모습 같기도 했고
앨범 깊숙히 꼿아둔 사진의 모습같기도 했지만 그들의 모습들은 눈부신 광채로 잘 보이지 않았음을 잠시후에 알았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그 형상은 다름아닌 내 몸을 만들어 준 어머니였는데 그녀는 너무도 어린 모습이어서 엄마라기 보다 누이 같았고
그 누이는 나를 향하여 쉼없이 미소를 보내고 있었지만 그녀를 두고 여자라는 호칭을 부를 수 없었으며
그 곁에 있는 아버지도 너무도 어린 모습이자 아름다운 형상을 하고 있어서 누가 누군지 알 수 조차 없었다.
자세히 보니 이곳으로 오는 모든 영혼들은 성별이 없었고 누구하나 얼굴을 찡그리는 법이 없었다.
이들은 서로의 살결이 닿을 때 마다 행복해 하고 있었지만 감각으로 행복해 하지 않았고 단지 함께 있는것 만으로 행복에 겨웠으며
그 살결의 빛깔이 맑은 비취빛으로 하늘과 닮아 있었다.
이들의 피부는 또 얼마나 촉촉한지 갓태어난 아이들보다 살결이 더 반질 거리고 윤기가 났으며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듯 했다.
나는 허공에서 얼마나 허둥거렸는지 다리에 쥐가 나기 시작했고 그 다리를 주무르며 조금이라도 더 빨리 발을 땅에 딛고자 했다.
내 발이 호스텔의 작은 2층침대에 걸쳐 있음을 알았을 때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피곤에 곯아 떨어진 나는 알파카 이불을 걷어차고 침대 모서리에 빨래처럼 걸쳐 있었다.
깔라파떼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Keuken호스텔로 우리를 데리러 온 미니버스가 경적을 울렸다.
우리는 전날 빼리또 모레노빙하를 보기위해서 이 언덕에서 10분거리에 있는 깔라파떼 주변을 서성거리다가 이곳 에이전시를 둘러 볼 기회를 가졌었다.
남미의 대부분 지역이 그렇듯이 현지에 도착하면 '현지투어'를 이용할 수 있어서 얼마나 편리한지 모른다.
호스텔로 돌아오자 이곳 근무자가 우리의 행선지를 알아보고 즉시 전화를 하여 다음날 이 버스를 보내 준 것이다.
혜은과 나는 호스텔에서 도시락을 준비하고 버스에 올랐다.
깔라파떼 언덕위에서 보면 너무도 평온해 보이는 아르헨티나호수(Lago Argentina)위로 바람이 불고 있었다.
Calafate라는 이름은 이곳에 서식하는 나무의 이름이자 빨갛고 작은 구슬처럼 매달린 이 열매를 두고
이곳에 살던 인디오들이 붙인 이름인데 이 열매를 따 먹으면 이곳으로 다시돌아 오게 되어있다는 뜻이 함유된 너무도 정감있는 이름인데
우리가 이 아름다운 깔라파떼에 있을 때는 그저 붙여 본 이름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나의 마음은 온통 이 지구 끄트머리에 있는 한 작은 도시 깔라파떼에 빠져 들고 있다.
이곳에도 봄이 오고 있었다.
깔라파떼 언덕으로 무시로 불어제끼는 바람의 틈바구니에서 민들레가 노오란 꽃을 피우고 있었고 미루나무에 새롬을 틔우고 있었다.
바람을 등진 양지바른 곳에는 이름도 알 수 없는 새롬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멀리 아르헨티나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끔씩 진눈깨비가 흩날리고 있는 이 언덕에서 바라보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왼쪽 옆으로 시선을 돌리면
머리에 하얗게 눈을 뒤집어 쓴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었다.
버스가 아르헨티나호수를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우리를 쏟아놓고 호수를 둘러보게 했다.
그 호수 수면에는 바람한점 없는듯 잔잔했고 곧 뭐라 말을 할듯한 모습으로 그들도 우리를 바라 보았다.
아무런 생각이 떠 오르지 않는 이 호수를 보라보며 곧 다가올 빙하는 또 어떤 감동을 줄것인지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땅속에 갇혀 지내다가 이렇게 드 넓은 호수와 산들을 바라보면 어떤 생각들이 떠 오르겠는가?
새롭게 펼쳐진듯 때묻지 않은 이 대지를 그대로 오려서 우리나라로 옮겼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들었다.
그래서 서구의 침략자들은 이 대지를 두고 '신세계'를 '발견'했다고 떠들며 곧 인디오로 부터 노략질을 한 게 아닌가?
지금... 이 때묻지 않은 깔라파떼에 인디오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흔적도 없이 사라져간 그들이 새롭게 둥지를 튼 곳이 바로 이 호수였고
그들은 셀 수도 없이 많은 손을 들어 흔들며 이방인인 우리들에게 환영의 인사를 보냈고 작은 언덕곁에서 깔라파떼가 바람에 흔들거렸다.
인류가 수백만년전에 이 땅에 출몰했다고 과학자들은 말하고 있고 인류최초의 인간이라는 '아담'의 두개골을 찾아서 동분서주하고 있는데
그들이 정작 깨닫지 못하고 놓친 모습이 이 호수에 고스란히 녹아있었고 그 모습들은 육안으로 전혀 분별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깔라파떼의 빠알간 열매를 씹어 보면서였다.
달짝지근한 물이 배어 나오는 이 열매의 크기는 짝퉁진주목거리에 장식된 진주만한 크기였고 그 열매를 입끝에 대고 가만히 깨물자 말자
나는 '유체분리'를 느끼며 내 몸을 이탈한 영혼은 어느새 이 호수와 빙하가 잠들어 있는 하늘 높이 두웅실 떠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꿈에도 그리던 파타고니아 남단 깔라파떼는 그렇게 우리를 꿈속으로 몰아 넣었고
태초의 모습을 갈망하던 우리는 마침내 창조조의 손길이 그대로 묻어있는 새로운 땅에 발을 딛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이곳을 떠나면 곧 우리민족의 최대명절인 추석이 다가오고 그 명절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볼 것인데
부모님의 생전에는 그렇게 간절하지 못하던 기억들이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 나서 그리움을 사무치게 불러 오는것 처럼
세상에 홀로 버려진 느낌을 받을 때 위로 받고자 한 대상들은 모두들 가식을 보였고 인간들의 가식이란 참으로 무서운 세상의 '존재'였다.
"뭐 대충 살다가 죽으면 되지 그렇게 복잡하게 세상을 살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 수 있겠느냐"는 반문으로 나를 윽박질렀던 사람들...
그들이 내게 보여준 것은 '경험'이었고 또 '경전'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종류의 하나를 '바이블'이라고도 했다.
나는 한동안 그 경전들에 심취하여 뒤집어 보고 또 써 보고 통독도 해 보며 '깨달음'을 얻고자 했고
마침내 작은 깨달음이 있는가 싶었는데 그 깨달음이란 한 작은 지식에 불과 했고, 나는 그 경전을 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달달 외우고 있었을 뿐이었다.
내가 이 땅에 태어난 이유에 대해서 이제 막 성격형성이 시작되려는 아이들처럼 삶의 이유에 대해서 되묻고 또 되묻는 일이 반복되면서
마침내 당도한 결론은 별것아닌 '여행'이었고 이 여행은 '순례자'의 한 모습이라고 단정지었다.
그렇게 당도한 이 땅에서 내 몸을 이루고 있는 살덩이가 곧 주검이 되고 내 몸을 움직이게 했던 생명체인 '마음'이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있었던 것이다.
혜은과 나는 빼리또 모레노빙하가 한눈에 바라 보이는 작은 언덕위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곳은 깔라파떼들이 납작 엎드려 바람을 피하고 있는 곳이며 빙하가 한눈에 쏙 들어오는 언덕인데 이곳엔 깔라파떼가 지천에 널려 있었다.
사람들은 빙하에 다가서며 환호성을 터뜨렸으나 그들의 환호속에는 무지하게 큰 얼음산을 본 장관에 그쳤고
정작 그 얼음덩이를 이루고 있는 '작은 알갱이들의 추억'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이 작고 위대한 알갱이들은 인간들의 몸을 이루고 있었던 조각들이며 우리가 늘 섭취하고 있었고 없어서는 안될 물질의 모양들이었는데
태초의 창조주는 그 귀한 알갱이들을 고스란히 이 곳에 '냉동'해 두고 그가 필요를 느낄때 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해동하여
하늘로 날려 보내고 있었던 것인데 그가 호흡을 통하여 알갱이들을 하늘로 보낼 때 마다
그 알갱이들은 한번도 보지못한 행복한 모습으로 비행을 시작했다.
또한 한편에서는 임무를 다 하고 돌아 온 알갱이들이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알갱이들의 무리속으로 사뿐히 내려 앉았고
그들은 하늘을 우러러 보며 또 다른 임무를 기다리며 행복해 하고 있었다.
곧 집으로 돌아 갈 시간이 다가온다.
내 육신이 형제자매를 만나고 아들 딸들을 만나면 기쁨에 겨워 행복해 할때 여전히 남아 있는 숙제하나...
그건 잠시후... 이 아름다운 땅에 살다가 내가 돌아 갈 때묻지 않은 창조주의 손길이 남아 있는 거룩한 땅이다.
그 황홀경에서 나는 영원을 꿈꾼다.<계속>
완전히 재편집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