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항공학교! 그 뜨거웠던 여름..........

자유게시판

육군항공학교! 그 뜨거웠던 여름..........

김수원 19 1,139
(여기 소개하는 글은 조종동기회 홈에 올린 글임. 참고로 말씀 드리면....육군항공학교 고정익 조종 79기는 1977년 6월 19일 총 55명......ROTC 25명 3사,기행사관,특임 등 타출신이 30명......이 입교하여 1977년 12월24일 32명이 졸업하였으며 그 중 우리 ROTC동기들은 15명이 졸업하였다. 교육은 매 단계별로 책크를 받으며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교수부 회의를 거쳐 퇴교시켜 원병과로 보낸다. 단독비행이 제일 큰 고비였었다. 또한 타출신 장교들은 모두 대위에서 전역하였고 우리 동기들만 모두 중령 대령까지 올랐었다. )


나의 임관 당시 원래 병과는 공병이었다.

임관 당시 우리 학군단에 공병병과 할당이 십여명 정도로 알고 있는데

알다시피 공대 출신은 공병을 선호하였고 30명이상이 공병병과를 지원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운이 좋아서 공병으로 가게 되었다.

지금 털어놓지만 당시 학군단장님이 아버지 친구인 것이 아마도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았다.

어릴 적부터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멋 있는군인이 되는 것이었고

다음은 어릴적 고향의 푸른 하늘을 새카맣게 높이 날으는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었으며

중학교 시절 부산으로 수학여행 가서 난생 처음 본 산같은 배를 보고는

배를 운항하는 선장이 되고 싶었었다. 

그러나 행인지 불행인지 기회를 얻지 못했었다. 

그당시 그래도 아직 가능성이 있는 나머지 두개의 꿈이 있으니

기회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마음에 두고 있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에서 ROTC를 지원했고 2년여의 과정을 거쳐 빛나는 육군 소위를 어깨에 달았었다.


임관후 육군공병학교에서 16주간의 초등군사반 139기 과정을 마쳤었다.

공병학교 졸업 무렵 육군항공 조종사를 모집하는 안내를 보고 드디어 내가 하고 싶었던

조종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에 3년간의 복무연장에도 불구하고 망서림 없이 지원했었고

1977년 6월18일 육군공병학교를 졸업하고 6월19일 조치원 육군항공학교에 입교 한 것이다.

당시 공병학교 훈련 마지막 주 ATT훈련 중에 항공학교 지원자인

문명도 이상익 이찬희 등 몇명이 학교 울타리를 넘어 몇일동안 탈영했었다.

병과학교 졸업후 자대배치까지 몇일동안 여유가 있기때문에 대부분의 장교들이 이 때

휴가를 가는 것인데 항공학교 지원자들은 곧바로 다시 입교를 해야 했었다.

그래서 겁도 없이 휴가 미리 간답시고 훈련을 무단 이탈해서

공병학교 울타리를 넘은 것이었다.

공병학교 졸업식에 참석 했었지만 나중에 들으니 학교에서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교육 중인 장교 몇명이 아무런 보고도 없이 사라졌으니 그럴 수밖에 엄연한 탈영이니

완전히 남한산성 감옥에 불명예 전역감이었다.

다행히 공병학교에 근무하던 ROTC선배 장교들이 쉬쉬해서 넘어간 것으로 들었다.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던 시절이었다.



어쨌든 조치원 역에 다블빽을 매고 내리니 우리 조종기수보다 한기수 위인

당시 조종78기들이 막 단독비행을 끝내고 앞 가슴에 빨간 단독비행 기념 윙을 달고

폼을 잡으며 으시대고 역앞에서 어슬렁 거리던 기억이 난다.

이름은 모르지만 지금도 그 얼굴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사람 나중에 자대 배치 후 비행임무 나가서 보니 화천 비행장에서 근무했던 것 같다.

비행적응 검사를 위한 관숙비행과 첫 교관은 강원도 인제에서 비행임무 중

악천후로 순직하신 공재수 소령님이셨다.

그다음에 채수일 소령님이 교관을 잠시하다가

우리 빛나는 육군소위의 자존심을 무참히 깔아뭉갠

조충구 준위가 기본편대 교관을 하면서 단독비행까지 끝냈다.

조충구 교관님으로 부터 기합도 많이 받았지만 가르치는 열정은 대단했었다고 생각된다.

비행장에 훈련기가 많아서 이착륙 훈련이 어려우면 조치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부강읍 앞을 흐르고 있는 금강의 직선 뚝방을 활주로 삼아

모의 이착륙 연습을 했을 정도로 열심히 가르친 분이셨다.

오인식 동기는 처음부터 같은 비행훈련조였고 조주연 중위(3사 출신)가 나중에 왔었다.

또 한분 나를 공포에 떨게했던 사단 항공대장님

그러나 비행훈련에는 누구 못지않은 열정으로 임했던

그리고 나에게 그 어렵다는 절선착륙을 전수해 준 목탁 문대식 중령이셨다.

이분은 국립 항공대학을 졸업하셨고 조종기술은 당시 전 조종사 중에서 제일이셨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시는지?

아마도 스님이 되시지 않았을까?



비행기 엔진 소리에 새벽이 오고 해가 저무는

1977년 이맘 때 쯤이 아마도 단독비행을 앞두고 그 뜨거웠던 여름 비지 땀을 흘리며

땀에 배인 칙칙한 꾸린냄새가 코를 자극하는 조종석에서

잘하면 잊지말라고 못하면 잘하라고 교관에게 기합받으며

더러는 선배 조종기수들에게 밤에 불려나가 단체로 얻어터지면서

밤이면 녹초가 되었어도 침상 머리맡에 붙여놓은 모의 비행 계기판을 쳐다보다 잠이 들었던.........

기다려지는 지상학 이론시간은 잠자는 휴식시간이었고

늦은 밤 잠자리에 들면서 내일을 걱정했던...........

몸이 나른할 때는 제발 비라도 와서 비행훈련이 없었으면 했었던........

그러나 첫 단독비행후 생전 처음 혼자 하늘을 날았다는 기쁨에 들 떠 있었던........

그리고 가슴에 빛나는 은 빛 날개를 달고 항공학교를 졸업하고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처음 들어섰던 항공학교 정문을 나설 때의 그 감격은 말할 수 없었고

그 때까지의 모든 어려움과 고통은 한꺼번에 항공학교 문앞에서 반납했었다.

내 기억으로는 모두 55명이 입교해서 20명 이상이 중도에서 탈락했을 정도로 훈련이 혹독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비행기 구경도 못한 사람들을 7개월이라는 짧은 기간동안에

조종사로 만들어야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어려움을 이겨 낸 것도 내 작은 희망을 이루어야 한다는 의지가

나를 버틸 수 있게 만들었었고

그리고 나는 5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장교로서 조종사로서 보낼 수 있었으며

잠시나마 내 두가지 희망을 이룰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 군 생활 5년을 내 인생에 있어서 황금기였다고 여긴다.


비록 항공학교 7개월이라는 짧은 훈련기간이었지만

어떤 과정의 동기들 보다 더 어렵고 혹독한 훈련을

같이 했기에 진한 전우애를 지금까지 나누고 있는 동기들을 얻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생각난다.

항공학교를 졸업하고 학교를 떠날 때 당시 학생대장이셨던

박문광 중령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높이 날아라 높이 나는 자만이 오래 날(살) 수 있다"

나는 지금도 높이 날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도 가수 이태원이 부른"솔개"다.

이렇게 더운 여름이면 가끔씩은

그 뜨거웠던 여름 비지 땀 흘리며

젊음을 불살랐던 항공학교 시절을 생각하고

더위를 잊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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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최준영
 야~  기대된다
오래간만에 신선한 예전 생각나게하는 글이네~~
고마버~~
정진앙
김수원 동기 기대 됩니다! 다른 곳에 게제했던 것도 괜찬으니 계속 올려 주세요. 육군출신들은 하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니, 가능하다면, 설명도 곁들여 주면 금상첨화! 즐감하고 물러 갑니다!
서옥하
마치 35년전으로 돌아가서 김수원 동기와 같이 훈련받는 것 같은 느낌(^_^)이 듭니다! 상세하면서 진솔한 글에 감사드립니다!
보병학교에서도 신청자를 받았던 것 같은데...! 난 육군항공에서 헬기조종사를 뽑는줄 알았더니, 고정익 조종사를 뽑은 거였군요?
김수원

우리가 조종교육을 받을 당시에는 기본이 고정익조종이었고 나중에 회전익(핼리콥타)로 기종전환을 했어요. 그러나 모두 회전익으로 바뀐지가 오래 되었어요. 그래서 요즘 육군조종사들은 모두 회전익만 조종합니다.
지금 조종사들에게 고정익조종사들은 전설적인 사람들입니다. 현직 육군조종사들 중 고정익 출신은 한명도 없습니다. 회전익과 고정익은 날으는 원리, 조종방법, 조종계통이 완전히 틀립니다. 그러나 길을 찾아가는 항법의 원리는 같습니다. 대한항공 등 민항에서 조종사를 할려면 고정익을 조종해야 하는데 간혹 회전익 조종사들도 훈련 후 소정의 과정을 거쳐 대형 민항기 조종사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동기들 중에 아직까지도 조종사로 있는 동기는 대한항공 수석기장인 이정택과 최형경이가 있습니다. 그밖에 경찰항공대,소방방제청,민간핼기사,산림청 등에서 활동했던 동기들은 모두 은퇴한 상태로 알고 있습니다.

임우순
실감나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와~ 몇 분만에 내가 육군항공학교 입교해서 하늘을 날으는 기분!
수원 동기 글을 보니 역시 사람은 어릴적 꿈을 이루려고 애를 쓰면서 일생을 마치는가 봅니다.
하늘을 날고 바다를 떠다니는 꿈을 꾼 그대가 존경 스럽소.
난 겨우 멋진 오픈카를 타고 이탈리아의 경치 좋은 언덕 길을 달려보는 것이었는데 (영화에서 처럼) ^^
 
김형목
하하하 ~~~~~
김수원동기의 신선한 글 고마우이 ~~~~~~
육군항공이라,
오인식동기가 항공학교 교수부장을 아마 오래 했지.
조카가 ROTC출신인데 항공교육을 받고 전방에서 헬기를 조종하고 또 무슨 교육을 받는다는 데 ?
러시아어를 배우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로 유학이라도 갈려고 그러나 ?
하여튼 군시절 수고들 많았다.
그전에는 고정익으로하고 지금은 회전익을 한다고,
육군항공 그러면 정찰기를 조종하는 줄 알았는데 !
각지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들이 아름답다.
좋은 소재들을 찾아 올려주기 바란다.
조주현

오랫만에 홈피에 들어왔더니 비행기 이야기로 가득하구랴 ㅎㅎㅎㅎㅎ
근데 울산 군단에 아직 신고안했던데------

오자진
해워니가 빈병 헌병하니까 가겠어
그래도 하늘을 주름잡던 사나이인데~~``ㅋㅋㅋ


아이고 전용 부속 풀장으로 수영하러가야지~~해워니 메롱
최해원
3월달까지 거기서 꼼짝말고 있꺼라 ~~~ 자버러 갈텡께 ㅋㅋㅋㅋ
최해원
수원아 ~~~~ 존말헐때 군단장께 싱고부터 하거래이 ~~~~
글도 참 잘쓰느구마 ~~~ 읽고 있으니 내가 하늘을 날고 있는것 가트다야 ㅋㅋㅋㅋ
오자진
이누마 정장에 나비 넥타이 매달고  BMW로 정중히 모시러 가야지
항공 이라잖아 항공
쟤들은 워카에 진흙이 안묻어 ~~ㅋㅋㅋㅋㅋ
오자진

공병핵교에서 항공장교 모집할때 나는 어디 있었지?
혹시 토요일 서울행 특급과 연결되는 삼랑진 가는 50원짜리 기차타기 위해 점심식사도 포기하고
진영으로 냅다 토끼고 있을때 모집했나 

그때 항공병과로 전과 했으면 저누무 해워니한테 빈병 골병 헌병소리는 안듣는건데  ㅠㅠㅠㅠㅠㅠ

이름을 호명 할때면 오자지인 불러놓고 약 6초간 다음 사람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꽉 깨문채 가호를 잡기위해 애쓰시던 구대장 형들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암튼 3명의 구대장  = 길호중(13기 충남대) 국중선(13기)전북대 조원표(12 조선대)= 이 있었는데
어찌나 골병장교들이 꼴통을 부렸는지 나중엔 구대장들이 호르라기,녹색 지휘자 견장과 흰수갑을
집어 던지고 구대장 안한다고 울었던가 

본래 공병 병과는 1기에 60명에서 80명으로, 빳다와 구보가 장난이 아니라고 들었는데 
 
갑자기 15기때 부터  도하여단이 신설된다고 해서인지 250명가량이 몰려오고 끝발있는 아버지들이 
많아서인지 도착 하는날부터 울타리 넘어가 막걸리 먹고 오질 않나,  발도 못맞추고
위탁교육온 제주대 해병 김병학이는 30명 육사애들과 시비가 붙었다가, 공병학교 밖 논바닥으로
끌려가 육사30명한테 빙둘러 쌓여 돌림빵을 맞아 전치 3주의 폭행을 당하자

다음날 점심시간에 OAC  받으러온 해병대위들이 몰려가 육사내무반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일  
지금 김병학이는 제주도청에서 술도 안먹고 아주 얌전하게 공직근무를 한다고 들었다네  
문제의 13 내무반   

거기다 아직 임관못한 3사 애들을 붓들고 경례 안한다고 의설프게 다루다가, 밤에 싸움이 붙어 캄캄한 연병장에서  피아가 구별이 안되는 상태로 엉켜 싸우다 우리편끼리도 치고받는 불상사가 있었으니
나중에 자대에서 만나서는 사이좋게들 지냈지만 

전역후, 삼환기업에 입사한지 3개월만에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젯다 고속도로 현장으로 배치되어
현장에 도착하니 말만 들어도 무서운 구대장님이 이역만리까지 쫓아와서 떡 버티고 서있으니 
기절초풍할 노릇이지

12기 조선대 조원표 구대장니임이~~ 세상이 이렇게 좁을 줄이야
국중선 길호중 구대장 옆에서서 무게만 잡고 있으니 그양반이 제일 무서운줄 알았지
부처 반토막 같이 순하고 우리 졸업 시키고 바로 6월말 전역하는 3년 연장 왕고참 이었던것을~~ㅎㅎㅎㅎ
    




최해원
니는 맨날 니글은 안쓰고 꼬리글로 원글에다 초칠을 허데냐 ㅉㅉㅉㅉ
오자진
사진을 못줄여
이난리 라니까
너좀 이리로 와서 사진 정리좀 해줄래ㅋㅋㅋ
정진앙
군단장님 끗~빠~알로, 자지니 좀 워치게 안되겠습니까???
군 빈병인지 공병인지에서 처럼~ 필리핀 수빅만 에 처 박혀서 말장난이나 하고 있으니
정말 근무를 잘하고 있는 것인지, 매~앤~날 놀고 있는 거인지 알숙 없수~
조만간 헌병 보내서 잡아 들이든지 해야지 원~ 젠장~
자진이 원격 특강으로 사진 줄여서 올리는법 알려줄테니
http://nateonweb.nate.com/download/messenger/windows/4.1/download.php   <== 여기 네이트온 설치 후에 친구추가에 anselum@nate.com 을 입력후 내 핸폰으로 문자 보내면 원격으로 자진이 PC에 내가 접속하여 함께 따라 배울 수 있다. 
박진서
김 수원 동기 때문에 여러 동기들이 군대 복무 시절인 35년전으로 돌아들 가는것 같네요....
글 잘 읽었읍니다...
최해원

수원아 ~~~~ 바로 위에 박진서 라는 분이 2012년도 15기 동기회장 다시말씀 드리면 군사령관님 이시다 !!
차렷 ~~~~ 경례 하거라 ㅋㅋㅋㅋㅋ
내는 울산군단장이구 ~~~ 한번더 차렷 경롓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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