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의 휴식!! 평소 점찍어 두었던 '강릉 바우길 8구간' 답사를 나섰다.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지척에 동해바다를 옆에 끼고 걷는 멋진 길이다. 1996년 침투하다 좌초된 북한잠수정이 전시되어 있는 통일공원에서 출발하여 모래시계로 유명한 정동진역이 오늘 답사의 종점이다. 국문학적으로는 <헌화가> <해가사>의 주인공 수로부인의 숨결과 발자취가 서린, 동해안에서도 절경 중의 절경으로 꼽히는 코스이다.
1996년 9월 북한잠수정이 전시되어 있는 통일공원!!<퍼온 사진> 지나간 역사는 '내가 언제 그랬냐?' 하며 정지된 공간에 갇혀 망각이라는 침식의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등명낙가사' 에서 괘방산을 향해 올랐다. 이 절에는 '68년 12월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으로 희생된 이승복군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아름다운 경관만큼 분단의 아픔도 서려있는 이 곳. 그 처연한 대비가 차라리 비장미를 더해 준다. 바닷가에 굳건히 쳐진 비정한 철조망!! 경비 초소 너머로 맑은 물색과의 대조도 그랬다. 내려다 보니 뱃길, 자동차길, 철길, 하늘길이 정답게 어우러져 있다. 길이란 길이 모두 한데 모여있는 곳!! 자연의 서정과 역사의 서사가 엉켜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파도만 바라보고 있었다.
괘방산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가 우연히 눈에 띈 <1996년 북한 잠수정 승조원이 구축한 비트가 발견된 곳>이라는 팻말!! '도대체 이 놈들이 어떤 루트로 올라간거여?' 이 엉뚱한 호기심 발동으로 장장 시간 반 가량을 길없는 산속에서 헤매이는 시련을 겪게 될 줄이야!!! 졸지에 무장공비 루트를 경험한 것이다.
거의 두시간 산짐승 다니는 길을 헤매다가 만난 임도. 길을 만났다는 반가움도 잠시! 누가 이렇게 흉측하게 산의 옆구리를 파헤쳐 놓았는가 안스러웠다. 황량한 임도를 따라 걷노라니 엄청 덥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영동지역에는 폭염주의보가 내린 날이었다) 그 길을 따라 걷다보니 폐광 하나 산 기슭에 큰 입을 벌리고 있다. 갱도에서 흘러 나오는 물. 시원하고 목넘김이 좋다.
긴장이 풀리니 배가 고프다. 싸가지고 온 점심을 길바닥에 풀어 놓았다. 보온병 속의 따뜻한 커피, 알맞게 건조된 곶감, 고추장 발라온 파프리카, 찰떡 , 두유 등등----. 산중의 식사 이 정도면 왕의 수라상도 부럽지 않지 암!!
겨우 진입한 바우길 등산로. 먼 바다에 유람선이 유유히 떠간다. 내리막길이라 속도도 붙는다. 일망무제의 대양!! 녹음이 짙어 시야가 넓지 못한게 흠이다.
당집!! 정동진 3.9km. 이정표가 반갑다. 이 코스는 산 우에서 파도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하여 '산 우에 바닷길'이라 명명했거늘, 지금은 요란한 풀벌레 소리 밖에 없다. 여름이 물러나며 내지르는 요란한 대자연의 소리에 귀가 멍멍해 온다.
목적지가 보인다. 길은 시작하기만하면 어디엔가 끝이있다. 저 아래가 정동진이다. 산행 끝에 지친 몸은 저만치 보이는 목거지가 위안이기도 하지만 또 한모퉁이를 돌고 다시 나타나는 산자락을 넘어야 다가갈 수 있으므로 더 마음이 조급하고 힘들다. 저 아래 언덕 위에 뻘쭘하게 올려 놓여진 '정동진선쿠르즈호텔'이 한눈에 들어온다. 배는 물에 떠있을 때 비로소 배 아닐까?
구간 산행을 마쳤다. 인증샷을 하고, 캔맥주 한 캔을 단숨에 털어 넣었다. '캬!! 이 맛이지---" 차라리 잠시 눕고 싶었는데 한 무리의 경상도 아줌마들이 몰려와 '오늘같은 날 고추말리기 딱 좋은 날이제. 킥킥킥---' 어쩌구 저쩌구 소란을 떨어 정신 산란하여 자리를 옮겼다. '고추말리기??' 이상한 뉘앙스일세----.
정동진역!! 떠나감이 있으면 돌아옴도 있으리. 플렛홈에 서면 누구나 가슴이 두근거린다. 누구나 가슴 속에 보헤미안이 들어있다고 했다. 아니면 그 옛날 이 길에서 아름다운 수로부인을 보고 <헌화가>를 불렀다는 어느 노인의 로멘틱한 정서를 따라잡기 해도 흉이 안될 나이 아닌가? 그러나 휘휘 둘러 보아도 어디에도 수로부인은 없었다.
2011년 8월 28일. 여름이 채 물러나지 않은 무더운 날이었다.
자동차로 달리면서 감탄사를 연발했던 끝도 없이 넓고 검푸른 동해와 해안선, 쉴새 없이 휘몰아치며 으르렁 거리던 하얀 파고의 거친 숨결, 곳 곳의 절경들이 절로 떠오릅니다만.
이 코스는 바다와 산이 더불어 숨을 쉬는 것 같아서 꼭 한번 답사하고 싶네요.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