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군인 "김오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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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군인 "김오랑"

황길중 5 825
고 김오랑 육군 중령. (1944.4.5~1979.12.13)
28년 전 오늘 저녁 7시30분, 한남동 육군참모총장공관에서 울린 총성은 한국 현대사의 시계바늘을 몇 바퀴 뒤로 돌려놓았습니다. 전두환 국군보안사령관이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불법 연행함으로써 군사 반란의 서막이 시작된 것이죠. 쿠데타 세력들은 미리 주도면밀하게 반란계획을 세워 두었고, 이들의 반란을 막아야 할 위치에 있던 군의 주요 지휘관들은 지휘계통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뒤늦게야 반란 사실을 감지한 몇몇 장군들이 백방으로 쿠데타군을 진압하려는 노력을 하지만, 정치장교들의 사조직인 하나회의 선후배 사이로 끈끈하게 엮여 있던 반란세력은 이런 시도를 무력하게 만들었습니다. “나 육사 몇 기 아무개야! 출동하지마!” 이런 한 마디로,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지휘계통과 명령 체계가 와르르 허물어지고 보안사에 있는 선배가 시키는 대로 “예! 알겠습니다”라며 꼭두각시처럼 움직입니다. 쿠데타를 진압하러 출동하던 부대들은 지휘관과 반란세력들과의 이해관계에 따라 부대로 돌아가거나 주둔지에 발이 묶였습니다.
13일 새벽 0시 15분, 송파구 거여동의 특전사령부 건물을 뒤흔든 요란한 총성은 군사 반란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반란을 진압하려던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하기 위해 들이닥친 쿠데타군과 사령관을 보호하려던 특전사령관 비서실장 김오랑 소령 사이에서 벌어진 총격전이었죠. 이 총격전에서 반란에 동원된 3공수여단 15대대 병력 10여 명에 의해 김오랑 소령이 피살되고,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왼팔에 관통상을 입은 채로 보안사 분실로 끌려갑니다. 공수부대의 총사령관이 휘하 부하들에 의해 체포되는 이 장면은 12.12 군사반란의 성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육사 25기 출신의 김오랑 소령은 69년 임관후, 베트남을 비롯한 전,후방 부대에서 소대장,중대장,참모장교로 훌륭히 임무를 수행하고 고등군사반과 육군대학을 발군의 성적으로 졸업한 유능한 장교였습니다. 79년 3월에 특전사로 전입와 3공수여단 16대대 부대대장직을 수행하다 사령관 비서실장에 발탁되었던 참이었죠. 사령관의 곁을 지켜야 할 참모들마저 반란세력에게 회유 당하거나 일신의 안전을 위해 몸을 피했을 때, 김 소령은 권총 한 자루를 가지고 정병주 사령관의 곁을 지켰습니다. 쿠데타군이 쏜 M-16 소총탄에 복부와 허벅지, 가슴에 여섯 발의 총상을 입은 그는 현장에서 사망합니다. (총격전 직후 현장을 보았던 목격자는 김오랑 소령이 숨은 쉬고 있었고, 빨리 후송했더라면 살았을 수도 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김 소령의 비극은 그 한 사람의 죽음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역사의 잔인한 수레바퀴는 집안을 풍비박산시켰죠. 부인(백영옥)은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충격에 눈이 멀었고, 비명에 간 막내아들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던 김 소령의 어머니는 2년 뒤 눈도 채 감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들이 반란군의 총탄에 맞아 숨진 것도 원통한데 그 시신마저 암매장(부대 뒷산에 매장되었던 김 소령의 시신은 이듬 해 2월28일, 육사 동기들의 항의와 노력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되었으니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김 소령의 부인 백영옥 씨는 거주하던 군인 아파트에서 퇴거당해 갈 곳조차 없었고, 몇 번이나 삶을 포기할 생각까지 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장애인 보호시설과 양로원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통해 고통을 잊으려 노력했습니다. “꿈속에 그이가 나타나 아무 말 없이 빙긋 웃기만 해요. 다가가면 바람이 세차게 불어 접근하지 못하고 나는 울기만 해요.” (동아일보 1990.12.12)

6공화국이 들어서고 1990년 고 김오랑 소령은 중령으로 한 계급 추서되었지만 백영옥 씨의 한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죽은 남편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전두환, 노태우 전현직(1990년 당시) 대통령과 최세창 당시 특전사 여단장 등 6명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던 백영옥 씨는 돌연 병원에 입원한 후 고소장 접수를 유보 합니다. 세간에는 모종의 압력이 있었을 것이라는 풍문이 돌지만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1년 6월, 백영옥 씨는 자택에서 의문의 실족사를 당합니다. 경찰은 자살로 추정했지만 조카 김영진 씨 등 주변인물에 따르면 남편의 명예회복을 위해 백방으로 분주하게 뛰던 백영옥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이유는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인에 의문이 제기되었지만 백영옥 씨의 시신은 화장되어 부산 영락공원 무연고 납골당에 안치됩니다.

자신의 눈앞에서 비서실장 김오랑 소령이 목숨을 잃는 것을 본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여생도 불행했습니다. 부하가 쏜 총에 관통상을 입은 팔은 두 번의 수술을 받아야 했고, 강제 예편된 후에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생계를 위해 친구들과 함께 투자했던 종이상자 제조공장도 부도가 나서 시름 속에 세월을 보내야 했죠. 그러던 중 1989년 3월 4일, 경기도 송추 유원지 야산 중턱에서 나무에 목을 맨 정병주 사령관의 시신이 발견됩니다. 다섯 달 전, 집을 나갈 때 옷차림 그대로였습니다. 유서도 없었고 시신 주변엔 빈 소주병 3개만 있었죠. 군정종식을 위해 당시 명동성당에서 열린 기도회에 빠짐없이 참석할 정도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의 죽음에 의혹이 제기되었지만 경찰은 단순 자살로 처리합니다.
동작동 국립 현충원 29묘역 2923번 묘지에는 고 김오랑 중령이 잠들어 있습니다. 군인으로서 그의 행동은 합법적 지휘계통과 직속상관을 보호하려는 올바르고 충성스러운 것이었으며, 명예로운 죽음이었습니다. 군인에게 상관의 명령에 절대복종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합법적이고 적법한 명령계통에 의해 내려지는 한, 그것은 곧 국가와 국민에 대한 충성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국민을 보호하고 국토를 수호해야 할 국군이 그 본분을 잊을 때 어떻게 타락할 수 있는가를 우리는 80년 5월, 광주에서 흘린 귀한 피를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12.12사태가 ‘하극상에 의한 군사반란’이라고 명백히 규정하고 전두환 씨를 ‘내란집단의 수괴’로 판결했습니다. 헌정을 유린하고 합법적 지휘계통을 짓밟은, 자신들의 주인인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들이댔던 12.12와 5.18 관련자들에게는 서훈취소와 훈장치탈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하지만 그 뿐입니다. 대상자들 대부분은 훈장을 반납하지 않았고, 국방부와 행정자치부는 서로 회수책임을 미루고 있습니다.
군인에게 훈장은 어떤 의미입니까? 국가와 민족이 위기에 처해있을 때, 목숨을 바쳐 싸운 고귀한 희생과 헌신에 대한 명예로운 보답이어야 합니다. 참군인의 길을 걷고자 했던 한 젊은 군인은 마땅한 역사적 평가마저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김오랑 중령은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이 땅에 다시 12·12와 같은 일이 벌어질 때 당신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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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김일현
김오랑중령 사건은 이야기로 전해들었고, 조선일보 재직할 때 조갑제선배와 정병주장군을 몇일간 만나서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는데 김오랑중영의 이야기와 본인의 팔에 총상을 보여주며 아직도 감시를 당한다며 이장소 저장소로 옴겨다니며 이야기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헌병감 김?장군이야기도 하며 다시 그런 상황이 생긴다고 하여도 본인은 회유를 받지않고 그때처럼 소신으로 행동 할것이다 하는 이야기를 해주던 정장군님의 소신에 찬 음성이 생각나는군요
정용상
김오랑님은 내가 근무했던 3여단에서 4개월여 함께 지냈는데 직접적인 대대가 다르고 계급차도 있어서 교류는 없었기에 잘 모르나---, 그 후에 일어난 총격사--, 집안의 불운과 정병주장군의 불행한 일 등이 참 안타까움으로 남습니다. 정병주 사령관도 최세창 장군도 모두 존경할만한 어른들이셨는데---. 참 안타까워요.
임우순
사전에 뭐든지 막었어야 되는데,,,,,애석하구려...
이승준
이런 것들 모두,
전두환이 살아 있을 때, 해결되야 하는데..
사과도 하고, 화해도 하고..
 
518 건도 그렇고..
최해원
옛부터 지면 역적이요 이기면 충신이라 했던가 ~~~~
세월흘러 역사가 재조명되어 명예가 회복되고 충신이 역적으로 역적이 충신으로 바뀌긴 하였다만 그 기나긴 세월을 벙어리 냉가슴 앓았던 사랑하는 이들의 보상은 우찌하리오 ㅉㅉㅉㅉㅉ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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