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소포스의 우화1-수렁에 빠진 여우>
서양 문화 전통에서 우화의 레전드로 꼽히는 사람이 바로 아이소포스다.
흔히 이솝으로 알려진 그는 기원전 6세기 중엽에 그리스에서 활동하였다.
그의 신분은 노예였지만, 그의 지혜는 각국의 지도자나 지식인들에겐 귀중한 지침이 되곤 하였다.
그의 우화는 서구 문화에 하나의 전통을 형성했다.
어느 날, 그는 사모스 섬에서 연설을 했다.
“여우 한 마리가 물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움푹 파인 웅덩이에 빠지고 말았지요. 여우는 발버둥을 쳤지만,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수많은 흡혈 진드기들이 달라붙어 여우의 피를 빨아먹었지요.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고슴도치가 여우를 보고 물었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나요? 제가 진드기라도 쫓아드릴까요?’ 그러나 여우는 딱 잘라 거절했습니다. ‘아니, 그냥 놔둬.’ 고슴도치는 왜 그러느냐고 물었지요. 여우는 대답했습니다. ‘지금 이놈들은 아까부터 나에게 붙어서 내 피를 충분히 빨아먹었으니, 앞으로는 조금씩만 빨아먹을 거야. 하지만 네가 지금 이놈들을 쫓아내면, 나를 노리고 있던 굶주린 놈들이 새롭게 달려들어 내 남은 피를 빨아먹겠지? 그럼 난 견딜 수 없지. 그러니 그냥 놔둬.’ 여우를 그 수렁에서 꺼내줄 수 없다면, 고슴도치는 그냥 지나가는 것이 여우에게 도움이 되겠지요?”
이솝의 우화는 그림을 그려준다.
수렁에 빠진 여우와 여우의 피를 빨아 먹는 진드기. 착하지만 무력한 고슴도치. 이 그림에도 우리가 겪는 현실의 어떤 이미지가 떠올라 겹쳐질 것이다.
예를 들면, 부정부패한 고위 관리를 파면시키고 새로운 사람을 뽑으려고 하는데, 거론되는 후보자들이 하나같이 파면된 사람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진 않은, 한심하고 절망적인 현실.
현실이 우화와 중첩될 때, 촌철살인처럼 던져지는 메시지는 강력한 설득력을 갖는다.
우화의 달인 이솝은 어떤 상황에서 여우와 진드기의 우화를 던졌을까?
“사모스 시민 여러분. 진정하시고 잘 들어보십시오.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이 직접 뽑은 이 관리를 정죄하여 죽이려고 합니다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이 사람은 이제 더는 여러분에게 큰 해를 끼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 말씀대로 이미 많이 해먹었으니까요. 더는 그렇게 크게 해먹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이 사람을 처형하고,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을 앉히면, 굶주리며 기회를 노리던 그는 여러분에게 남은 것마저 깡그리 도적질해서 먹어치울 것입니다.”
어이없고 허탈한 결론이다. 이솝의 변론은 성공했을까?
결과는 알려지지 않지만, 그 관리가 사면되었다면, 그것은 순전히 우화가 갖는 정치적인 설득력 덕택일 것이다
<우화의 숨은 뜻, 지혜롭고도 위험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