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추억(자모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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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추억(자모 편)

서옥하 9 905
어머니란 단어에서 애틋한 감정을 느끼는 건 비단 저만은 아닐겁니다. 우리짐은 고등학교때 처음 TV를 샀었는데 당시 인기있던 여로라는 연속극을 보면서 일희일비했었지만, 사실 우리들의 어머님들이 걸어오신 인생길들은 여로의 태현실씨하고는 비교도 되지않을만큼 험난한 길이셨을거라고 생각합니다.
 
2남2녀의 장녀로 태어나신 어머님은 18살때 이웃 분들의 중매로 아버님과 결혼하셨다는데, 놀기 좋아하고, 집에 붙어있지않는 아버님때문에 고생이 많으셨다고 합니다. 큰어머님이 계셨지만 어린 시동생들(고모 5명) 뒷바라지 하느라 허리펴실날이 없으셨던가 봅니다. 먹을 것도 없는 집안이니까 봄철에 하시는 일이라고는 넓은 들판에서 쑥을 캐다가 이것저것 섞어서 식구들 먹일 음식장만으로 하루해를 보내셨답니다. 선산벌에 있는 쑥들은 당신이 다 캐어서 없앴다고 하시니까!
 
아마 영양실조셨겠지요! 5년동안 아이도 못가지셨다고 합니다. 큰집에서 나온 애들이 전부 딸이라고 할머니한테 매일 구박받으시는 큰 어머님하고 둘이서 붙잡고 울기도 꽤 많이 하셨던가 봅니다. 그러다가 제가 태어나고는 잠깐 반짝하셨답니다. 일단 할머니와 5분 고모님들이 저를 호위(?)하시느라 구박할 시간이 없으셨다나요! 젖이 잘 안나온다니까 집안의 먹는 1순위는 우리 어머님이 되었더랍니다. 큰어머님은 또 딸 나으셨다고 뒷전으로 돌려놓고...!
 
그런데 아무래도 먹을게 부족한 집안에 있으면 안되겠다고 아버님이 제가 2살이 되기전에 춘천으로 혼자 올라가셨답니다. 어머니는 1년뒤에 저를 걸리고, 갓태어난 여동생을 업고 아버지를 찾아 춘천까지 오셨다고 합니다. 당시의 교통편이라야 뻔햇을테니, 고생이 오죽하셨겟습니까!
 
그렇게 합류한 어머니는 심기일전해서 생활전선에 뛰어드셨겠지요! 제가 철나고 기억하기로 어머니가 편히 쉬시는 걸 본적이 없습니다. 장사라는게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손님이 있던 없던 나가야 하고, 돌아오시면 가족들 식사, 빨래, 청소 전부 어머님 몫! 언제 허리한번 마음놓고 펴보시겟습니까?
 
추운 겨울철에 바람막을 곳도 없는 노점상부터 시작하신 어머니의 억척같은 노력덕분에 중앙시장에 가게를 마련하시고, 1남3녀를 남부끄럽지 않게 키우셨습니다. 정말 뼈빠지게 노력하신 어머님덕분에 경제형편이 좀 나아셨어도, 어머니는 명절에 고향에 가신적이 없습니다. 아버님은 설이나 추석때면 꼭 저를 데리고 고향에 갔지만, 어머니는 돈 든다고 안가셨던것 같습니다. 어머니라고 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보고싶지 않았겠습니까만...!
 
자식들에 대한 어머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이고, 눈물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아버님이 자상하게 대해준 것도 솔직히 전혀 없고...! 친가에는 참 잘하는 아버님이 이상하게 처가집일에는 무신경해서 의아햇던 기억이 있습니다. 부부싸움 하시면 어린 저를 끌어안고 소리죽여 우시던 어머님의 추억은 아직도 가슴속에 남아있습니다.
 
그러다가 1남3녀 전부 대학공부 시키시고, 3째까지 결혼시키신후 몸이 안좋아지셨습니다. 처음에는 담석이 생기셨는데 제가 유학중에 딱 한번 귀국했을때 수술을 하셨습니다. 수술하시고 병원에 누워계실때가 어머님 평생 처음으로 가지신 가장 긴 휴식이셨을 겁니다. 그런데 그후에 제가 취직하고 난 후에 덜컥 당뇨병을 얻으셨습니다.
 
아마 지금이라면 좀 신경써서 관리도 하시고 하셨겠지만, 별로 그런적이 없으셨던 어머님은 결국 합병증으로 신장이 망가지셨고, 혈액투석을 받게 되셨습니다. 고생만 하시다가 이제 좀 쉬실만 해지니까 병이 드신겁니다. 처음 병원에서 의사가 3년 넘길 확율이 30%도 안된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그후 10년도 넘게 견디어 주셨습니다. 제가 어머님과 어디갈때 꼭 손붙잡고 다닌건 어머니의 희생에 대한 나름대로의 작은 보답이었습니다만, 글쎄요! 어머니의 은혜에 만분의 일이라도 보은하는 자식이 있을까요?
 
한번은 동생들이 와서 각각 어머니 다리를 하나씩 맡아서 주므르다가 큰동생이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엄마는 언제가 가장 기분이 좋으셨냐? 고...! 큰손자 낳았을때? 오빠가 대학교수가 되었을때? 처음 집 장만했을때? 하고 물었는데...!
 
어머니 대답은 "시아버지 돌아가셔서, 초상 치르러 고향갔는데 만장을 쓸줄 아는 동네분이 타계하셔서 붓글씨 쓸 사람이 없다고 했을때, 니 오빠가 나서서 붓글씨 쓰니까 동네사람들이 감탄하면서 칭찬할때가 제일 기분 좋았다!"
 
내가 "그게 뭐가 제일 좋았어요? 별거 아니잖아?" 했더니 "내가 자식들 공부시킨게 그렇게 자랑스러운 적이 없었지! 나는 국민학교도 2학년까지만 다니고 외삼촌들 때문에 학교 못나왔잖니!"라는 대답을 하시더군요! 당신 자식이 남한테 칭찬듣는게 제일 큰 행복이셨다는 어머니!
 
일주일에 3일씩 혈액투석을 하시면서도 아들 식사는 반드시 당신이 챙겨서 먹이셨던 어머니! 어머니가 해주는 보리밥이 맛있다고 하는 아들때문에 "보리밥집을 해볼까? 몸만 안아프면 해도 되는데.."하시던 순진한 어머니! 어머니! 아들은 음식맛을 잘 모르는 미맹이예요! 보리밥집 하셨으면 망했을지도...!
 
상태가 많이 안좋으셨다가 좀 회복되셨다고 혼자 산보나가셨다가 아파트 현관앞에서 쓰려지신 어머니! 그때 이 잘난 아들놈은 멋도 모르고 테니스장에서 놀고 있었어요! 죄송해요! 어머니! 이제는 편히 쉬세요! 투석때문에 물도 마음놓고 많이 드시지도 못했던 어머니!
 
이제는 눈물이 안날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더이상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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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최해원
어무이 아부지가 얼마나 보고 싶으냐 !!
아마 저 하늘나라에서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열심히 살아가고있는 자네를 흐뭇한 표정 지으면서 지켜보고 계실게야 ~~~~~~~
이 글을 읽으면서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부모님을 잘둔 행복한 놈이란걸 새삼 깨달으며 살아계실때 기쁘게 해 드려야지 ~~~ 그래야지 ~~~ 하면서도 아직도 투정과 어리광만 부리고 있으니 ㅉㅉㅉㅉ
오카야 ~~~~ 눈물 나올라칼땐 실컷 울어삐라 ~~~~ 시원 ~~~ 하게 엉엉엉엉 ......
이승준
해워니..
행복한 줄 아니, 다행이다..

투정도 어리광도 부릴 수 있는 부모님이 계시니 얼마나 좋냐..
임우순
눈물이 나오네...아주 감동적인 글이네...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상이네...
우리 어머니도 65세에 너무 일찍 돌아가셨지...평생 농사일과 머슴들 밥상만 차리시다가...고생만 잔뜩하시다가, 살만하니까 ...돌아가셨지뭐, 하늘나라로... ...
서교수글을 보니까 오늘따라 "엄마"하고 큰소리로 외치고 싶네...좋은 글 항시 고마워....
서옥하

이제는 어머니 생각을 해도 눈물이 안나올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무리인가봐!
괜히 고아인 친구들 어머님 생각나게 만든 모양이다! 앞으로 자숙할게!
덧글 감사!

이승준
그려~
우리 어머니는 다~ 저러셨을 것 같아..

평이한 얘기를 잔잔한 감동으로 와 닿게 해준 서교수의 글 솜씨..

대~단하요..
.
.

나도 울 엄마 생각나네..
흑흑.. 엄마 보고싶어 엉~~
최준영
에이구 엄마 생각나게 하네~~!!!!
최종왕
어느날 갑자기 느닷없이 찾아오는 그리움
그다음 자기 기분대로 표출되는 그리움의 크기(울려면 울고~)
이삼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 품안에 잠든 아이를 바라보는 어머니 얼굴" 이랬지...
그 품에서 자란 우리가 어찌 그 모습을 잊으리오.. 나 안.. 86년 아버지.. 87년 어머니가 하늘 나라로..
 곧 아버지 어머니 기일이 돌아 온다.. 동기들 살아 계실 때 잘하세여..   

오자진
em42.gif세상에는 우리 어무이보다 잘난사람이 하나도 없다(각자의 모친) 우리 어무이가 최고다 오카의 글 읽고 밀려오는 감동이 하도 커서 이제야 정신 차리고 꼬리글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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