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 최해원 |
작성일 : | 2005/06/20 10:15 |
조회 : | 26 회 |
제목 : | 제 목 : 싱고함돠 ~~~~~~ 2 탄 |
제 목 : 싱고 함돠 ~~~~~~ 2 탄 여러분드리 디,에무,젯뜨 !! 수색 매복 더러갈때 당시에 저는 통문 수문장으로 대대장으로부터 특뼐 지시가 있을때만 한 주먹이나되는 쇗뙤 (열쇠) 목꺼리를 꺼내들고서리 그 많은자물통 쇗때 맞추느라 안절 부절 하노라면!! 문 빨리 안 연다꼬 마중온 수색 중대장 혹은 소대장 ( 중위끕 나는 쏘위! ) 들이 다그치는 소리에!!! 그땐 정말이지 완전히 쬬랐쪄!! 수색중대장들은 우리 대대장들과 거의 맞먹는 인상을 줬지여!! 군대는 계급이 ?? 천만에!!! 전방서는 고생 마니하는 노미 최고 대우를 밧떠라구요!! 그죠?? 영하 25도씩 내려가는 날이면 꽁꽁 얼어부턴 몸에 군장과 방한복 , 방탄쬬끼, 장비들을 지고메고서 으슬렁 으슬렁 거리면서 철수하는 매복조들을 보느라면 밤새 밀어내기 , 대기호에서라면 끓여먹으며 근무하는 우리와는 차원이 달라서 말도 못 부쳐 보곤했쪄!! 월북한 대대장 덕부네 지오피여 안너~~~엉 하고 5사단 소대장에게 인계인수를 할땐군대 생활 끝난줄 아랐쪄!! 이젠 행복 시자기다 하고 조아라 켔찌요!! 우리 같은 소대장들은 육체적인 고통은 그러타치고!! 항상 소대원들의 모든 지휘 책임을감당해야 한다는 정신적 압박감에 항상 긴장의 연속 이었지요!! 항상 실탄이 장전되어 있고 수류탄 두발 공용화기에다 고참들의 횡포 ? 능구렁이가튼 선임하사 쬴아있는 신병들 소대원 각자의 애로사항 부모형제, 애인관리 등등에다 위로부터의지시사항, 밤새 순찰자들에게 지적사항 재설작업 교육훈련 ~~~~~~~~~~~~~~에휴~~~~ 후방가면 매일 실탄 확인 할 필요 없을테고 ~~~~ 정말 날아 갈것만 같았져!!! 후방오면서 수색대 편재가 바뀌면서 수색소대장 차출이 있엇는데!! 장교라도 정말 여긴 아무나 올수 있는데가 아니더라구요!!!! 계급은 중위급 키 170cm이상 무술 유단자 구보 운동에 소질있는자 !!! 각 연대에서 한명씩 차출 되는데 지가 당첨이 되억꾸만요!! 차출 소문이 나기 시작하자 각종 유언비어가 떠돈다 싶더니!! 당시에는 ROTC출신들은 사병들과 같이 제대하기 때문에 각종포상에서 제외! 특수 보직에서 제외! 뭐 ~~~이런 유언 비어랄까??? 지자랑 같지만 우리중대를 사단 선봉중대로 만든 일등공신 였찌요! 대대 ATT땐 10KM 완전군장 구보 ( 당시엔 배낭 20KG 야전삽 꼽고 실탄 1기수 550발에 대금차고 방독면 허벅지매고 수통 물 채우고 쇠로된철모끈 붕대로 칭칭감고 저울 갖다놓고 심판관이 일일이 군장검사, 꼴인후 군장검사 ) 오와열을 맞추고 이중 구호 군가까지 부르면서 꼴인지점을 통과한 시간이 48분 06초 ~~~~!!!!!!! 와~~~~아 ~~~~~ 우리 대대장 입 째지고!! 심판관들 서로들 시계 다시 마춰보구~~~ 3군 기록이다~~~ 정말 죽을 힘을 다해서 뛰고 또 뛰었지요!! 비포장 자갈길을~~~~~~~~~~ 글이너무 길어서 쪼겠어요 !! 이어서 보세여 !!! | |
최해원 : | 제림아! 함덕선 대대장밑에서 고생했겠네! 그양반 하나회땜시 군단장마치고 옷벗었따쿠더라! 융기야! 수색대는 40분대 끊어야 되지만 소총중대는 한시간안에 들어오면 합격이었다!! [2005/06/21 02:36] |
홍융기 : | 해원아! 나도 보병7사단에서 수색소대장을 쪼까 했다... 어제 아침에 GP총기사고를 보니 옛추억이 새삼스럽다...우리도 10키로 완전군장 구보 45분대에 낙오없이 완주했다. 지금도 힘들때는 낙오할려는 소대원들 소총매고 함께 구보하던 깡다구로 산다...그치! [2005/06/20 19:12] |
김제림 : | 난 61연대 3대대 소속. 반갑다. [2005/06/20 17:21] |
이우현 : | 월직사령이 쬐메 마음에 들라카네. 근데 너그 인자 알았나. 잘 한데이... [2005/06/20 17:15] |
최해원 : | 유운학중령은 60연대 2대대장 이었구 ~~~ 나는 61연대 2대대 [2005/06/20 13:15] |
김상돈 : | 해원아!! 20사단 동기구나!!! 유중령,오일병사건의 소속대대였구나!!! [2005/06/20 12:42] |
비탈길의 힘을 받아서 잘뛰는건가? 자신있게 이야기하는데 우리 사단 1등한 소대도 절대 50분 못끊었어!
장하다~~~
상장은 우리도 그랬따 ~~~~ 비중있는 상장은 장기 복무자들 주면서 너거는 제대할꺼니까 필요 없을끼고 ~~~ 물어보도 안하고 딴놈들 조삐고 흐흑흑 ~~~~
나는 유일하게 사단장 표창장 하나 주더라 "평소 교육훈련이 잘되어있고 전투력증강이 우쩌구 저쩌구 ~~~~" 우리 대대장 뭐든지 물불 안가리고 몸 안아끼고 설쳐데는 나를 무척 이쁘하긴 했응께 ~~~~~
난 연탄재 주워다 콘크리트 테니스코트를 클레이 코트로 만들어 주었더니 전두환사단장이 "군간부 체력장 공사에 지대한 공이 많다고 사단장 표창 주던데
미군부대시절 실내 농구코트의 마루바닥 들어내고 황토흙 퍼다 실내 테니스코트를 만들어 이순자 여사 및 사단 참모 아줌마들 낮에 문닫고 테니스 치게 해준것이 약발을 받았나봐 ~~ㅋㅋㅋㅋㅋㅋ
테니스치고 따뜻한 물로 목욕하라고 샤워장까지 만들어 주었고
아마도 5사단 양평서 구보할땐 아스팔트길을 뛰었겠찌 ~~~~~ 신탄리 ~ 대광리 자갈길 뛰었으면 47분대는 힘들었을끼다 크크크크크 ~~~~~~~~~
근데 너 어느대학 출신잉고 ???
거기 출신들은 구보를 잘 ~~~ 하누먼 ㅋㅋㅋㅋㅋ
우수장교 어쩌구해서....중위는 나혼자더군
전입 후 사단 교욱대에서 한달쯤 있다가, 8월에 대대로 배치되자마자 전방 투입 준비 하더니, 9월에 전방 올라가서,
그~ 추운데.. 겨울 내~내 고생하고,
봄이 되자 FEBA 부대에 내려와서 좀 할랑~하게 군대생활 할라했는데..
연대에 결혼한 동기가 생겨 전방 가기 곤란하다며 대신 가라기에, 안 갈라고 발버둥 치다가,
결국 올라가서 6개월 더 귀양살이 했네..
하기야.. 지금도 모이면 그 얘기를 하는 "소설 같은 일들.."이 그때 많이 벌어졌었지..
춥고, 외롭고, 쓸쓸하고, 답답하고, 우울하고..
"나 혼자 뭔~ 고생이냐.." 싶었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그 때가 좋았다.." 싶기도 하고..
소위달고 첫 부임부대가 바로 FEBA였는데 첨들어보는 이름이었고 철책이 뚫리면 즉시 투입해야 된다며 진지공사, 각종 훈련, 경계근무, 수색정찰, 매복, 분대ATT부터 소대,중대,대대훈련,대대ATT, 연대RCT, 사단 대항군, 월동준비 등등 차라리 철책이 할랑했으면 할랑했찌 ~~~~ 정신적인 긴장은 장교니까 어쩔수 없는게고 ~~~
나도 철책 소대장 두달 마치고 예비중대로 나와 대대 순찰돌고 있는데 6중대 3소대장 조진규(서울대)동기가 외출나갔다가 서울까지 튄것까진 좋았는데 제3한강교 검문소서 통행금지에 걸릴게뭐람 !!
육본서 명령하달되고 부득불 60연대로 쫓겨가삐고 60연대서 대대장한테 찍힌 동기생 김소위(서강대)가 왔기에 우리 대대장 나를 부르더니 김소위에겐 믿음이안가니 최소위가 철책을 한번더 맡아달라기에 명령에 복종안할수 있어야지 ~~~~ 우리 중대장 안된다고 지뢀하며 내 옆꾸리 꾹꾹찌르고 ㅋㅋㅋㅋ
사실 우리중대장 3사4기생인데 얼마나 깐깐한지 고생 무지하던터라 에라 잘됬다쿠고 6중대로 갔다오 !!
승준이 니도 잘난 동기덕에 철책한번 더 지켰꾸만 ~~~~~~ 나같이 ㅉㅉㅉㅉ
나안... 한계령길 장수대 까지 열씨미 뒤었다. 낙오하는 병사 줄로 묶어 끌게하고 뒤어서 밀고 하면서..
그 와중에 단풍관광 버스에서 어머니들이 던저주는 사과를 받는 넘들도 있고.. 매일 뛰는게 무서워 구보하다 도망간 넘 찾느라 전 중대가 비상걸리기도하고.. 암튼 추억의 설악산길이었다우..
근디 낙오하는 놈들을 와 줄로 묶냐 ㅉㅉㅉㅉㅉ 포로들 호송하는것처럼 ㅋㅋㅋㅋ
그래도 민간인들 구경하면서 던져주는 사과라도 먹었응께 행복하게 근무혔네 그랴 ㅋㅋㅋㅋㅋ
잘뛰던 친구들도 컨디션 안좋으면 퍼지는데, 그때가 난감해! 원래 못뛰는 애들은 미리 당번도 지정하고 해서 마음의 준비가 되었지만, 평소 잘뛰던 놈이 퍼지면 대책(ㅠㅠ)이 없어!
내리가짐을 느끼지 ㅋㅋㅋㅋㅋㅋ
사단에서 나부터 부대배치가 되는데 향로봉. 진부령을 담당하는 52연대가 된다더군..
향로봉 안개 .. 멋있다는 감언이설에 넘어가지 않고 서울 한 발이라도 가까운 예비연대(37연대)를
찍었다우.. 덕분에 민간인도 구경할 수 있었지만 많이 걷고 뛰긴했어.. 그래도 좋은 동기 덕에 사단 파견도 나가서 야간근무도 없었고.... 항공대 경비소대 등 ... 1년은 잘내내서 취직도 할 수 있었지. 하지만 넘넘 많은 전입 동기들이 고생이 많았어..
정말 고생 많았구나 아울러 해워니 오카 모두 다 고생을 많이 했으니 이렇게 야기거리가 많지
그러구 너희들 구보 와 신선한 공기 덕분에 지금 건강한 체력을 유지하고 있잖아
내가 들은 얘긴즉슨, 험한 지형에서 근무할때는 죽도록 싫었는데
80년도 이후 국민들의 삶의 질이 윤택해 마이카와 레저 시대로 접어들면서
사람들이 바글대는 유원지를 멀리하고, 경치좋고 물맑은 좋은 소풍장소를 많이 알아 여유있게
여름휴가를 즐긴다고 누가 그러던데
일열로 서면 나같은 묵직한 사람은 절대 안보이는 먼 곳에 있었군? ㅋㅋㅋ!
우리 포병은 뛰는 게 글쎄...ㅎㅎㅋ
그래도 통금있을 때 연천 대광리 자갈길 술먹고 밤새 걷던 기억은 또렸하네.
요즘 내 빠른걸음이 시속 6km 이니, 5km라면 50분이내에 들것 같은데???? 45분은 좀 심(^^)했다!
그런데 솔직히 지금 뛰라면 30분은 걸릴것 같다! 뛰는게 걷는것 보다 2배 빠르지는 않더라구!
수색대 임무는 첩보 입순데 후방에서 빼이 쳤구먼~~
위에 삼범이 동기가 12사근무 했다니까
수색대와 연관 된 야그~~
3군단 정보처 이준광소령이 12사 208GP( 확실한지 모르지만)~? 에서 월북사건이 발생~~
대략 군단 정보처에서 첩보수집 하러오면 통문 통과는 소속 확인하고 통과했는데 이사건 발생후 미8군정보처의 승인이 난 빨간 비표를 갖고와야 통과를 시켰지~~
정보처 첩보 수집장교의 인상착의는 대략 계급장 없는 야전항공 잠바에 모자에 계급장만 붙이고 찦차 운전병 단랑 한명만 될구 다니구~~ 한마디로 끗발과 과관이 아니었지~~근데 월북사건이후 내가봐도 처량한 신세~~
GOP부대장이 통과 안 시키면 그만
2급비밀인데 ~~여기다 써도되나~~??? 살살 써볼까???
수색대 운영은 참모부 중에 정보참모가 관장 하잔아~~
어느날 첩보수집차 온 정보처 소령을 계급장 없는 군복주고 총도 안주고 수색대원과 같이 DMZ내로 투입했더니 첩보 수집차 온 소령 겁 먹고 부대 복귀후 불만이 상부에 보고되어 한동안 시끄러웠던 기억
소령을 계급장 없이 군복 입혀노니까 ~~물론 소대장이나 ,소령이나, 병사나 그 넘이 그넘 같드 구만
수색대는 첩보수집이 우선 아닌가 ~~
물론 기초체력과 유능한 저격수가 있어야 되겠지만 사실 수색대는 매복 들어가서 적에게 노출 안되게 기도비닉과 은,엄폐해야 되고 총 소리내면 안되,적 만나면 맞장 잘 뜨고,대검 잘 써서 단 칼에 멱 잘 따고~~
뭐 이런 훈련이 더 중요하지 않나~~ㅎㅎㅎㅎ
군단장이 한 수색대는 뭔가 잘 못 돌아가는 수색대 같따~~ㅋㅋㅋㅋ???
그넘때매 부대명칭 다바뀌고~ 나중에 교육 받었는데 그때 당시 작계 바뀌고 뭐하고 해서 당시돈으로 1억인지 10억인지 피해를 밨다고 하든기억 ~~주길 넘이지~~
재미나케 노올자~~ㅋㅋㅋㅋㅋ
그러구 공수부대 아이들 만나면 꼬리 내리고 깨갱 했잖아
난 오늘은 110GP 들어가구 내일은 120GP 1사단 전 Sector 9개 GP를 수시로 드나들며(아침에 들어갔다 오후에 나오지만) 고생하는 수색대 요원들 밝은데서 생활하라고 전기불도 넣어 주고 따뜻한 물로 목간도 하라고 목욕탕도 만들어주고, 산밑에까지 물 뜨러 가지말라고 급수시설도 해주잖아
한번은 110GP장이 전역하는 사병이 있어 회식때 소주도 좀 필요하다 하여 막소주 대두병으로 5개 사다 주고 밤새 후회하다 다음날 아침에 가보니 별일이 없어 가슴을 쓰러내린적도 있었다
5사단 동기들에겐 미안 죄송 했지만 우리 20사단 역시 후방와서 나름데로 고생도허구 보람도 채우는 병정놀이 였었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