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군대생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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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군대생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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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5 사단  50연대  3대대 의무지대장 (군의관) 으로 전출

 

사단 의무근무대는 별로 할 일도 없어 돌아가며 당직 서는 것 외에는 부대 밖에 나가서 삼시세끼 뜨거운 밥 먹을 먹거나 드물게 수의장교가 얻어오는 고기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시며 노는 등 한량처럼 지냈었는데 막상 발령을 받아 최전방으로 가려고하니 그동안 정이 든 선배,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이 섭섭해서, 또 전방의 낯선 말단 대대의 새로운 곳으로 떠나가는 것이 겁도 나고 그래서 인지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군인은 명령에 따라야하는 법. 나는 사단 의무대대장님께 전출신고를 한 다음, 더플백를 메고 씩씩하게 발령 받은 50 연대로 출발했다.

 

그리고 다목리에 있던 15사단 50연대에 도착, 연대 의무 중대에서 의무중대장인 군의관 육순황 대위님을 만났다. 몸집이 푸근하고 금테 안경을 썼던 육대위님은 첫날부터 나에게 저녁을 사주시며 친절하게 대해 주셨다. 후에 그분은 숙맥이고 수줍어하는 나를 놀리며 딱지를 떼 준다면서 일부러 여자가 나오는 술집으로 데려가신 적도 있다. 그의 안내로 다음날, 연대장님께 신고하고 다시 한참을 산길을 걸어서 3대대로 가니 밤이 늦어 대대장님께는 신고를 할수 없었고 전령이 다음날 신고를 하라고 하였다. 어쨌든 이래서 나는 팔자에 없는 군의관  노릇을 하게되었는데…  


9. 포병대대 군의관 윤중위 선배님

 

다행이 도착한 바로 며칠 후, 나는 알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소문을 들으셨는지 50연대를 지원하는 옆 포병사령부의 군의관님이 ROTC 14기 선배님이라며 다른 14기 포병 선배님 한 분과 함께 몸소 후배인 나를 찾아 주셨다. 그리고 고맙게도 나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저녁을 대접하여 주시면서 아무 것도 모르는 나에게 의무지대장의 임무에 관하여 많은 조언을 해 주셨다.

 

대구 산업대 사회사업학과 출신 의정장교 이셨던 선배님은 당시 벌써 결혼하여 방을 얻어 영외거주를 하고 계셨는데 예쁜 아기가 하나 있었고 경상도 사투리의 형수님께서 음식도 잘하시고 서글서글하시어 고맙게도 여러번 초청을 받았고 신세를 많이 졌다. 나중에 듣기에는 선배님은 제대 후 대구 무슨 시장에서 장사를 하신다는데 연락이 끊겨 그렇게 신세를 지고도 한번도 찾아뵙지 못하여 아직도 죄송하다. 그때 선배님께서 인수인계를 잘 받아야하고 잘 못하면 서류에는 있으나 실제로는 없는 물품을 받았다고 싸인하면 나중에 물어내야된다고 조심하라고 하셔서 의무대 물품 인수인계에 무척 신경을 썼던 것이 기억난다.

 

왜냐하면 그 당시 보병대대 안의 의무지대에는 소화제, 암포젤, 테트라싸이클린, 클로람페니콜, 앰피실린 등 항생제 몇 병, 바르는 연고, 소위 아까찡끼 라는 빨간 약과 비슷한 엷은 분홍색의 치메로살, 요드 팅크쳐 등의 약품들과 응급처치 도구 등 몇가지 물품이 전부였는데 그 물품들은 대부분은 육이오 직후 미군에게서 얻은 것들이 전해내려온 것이어서 물건들도 낡았지만 품명이 대부분 영어로 기록되어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응급처치 물품 중에 '터니킷' 8개 라고 한글로 써 놓아 이게 뭐 대단한 물품 같지만 알고 보면 tourniquet 은 부상 당한 병사가 피를 많이 흘릴 때에, 삼각건 수건에 끼워넣어 지혈을 할때 쓰는 작은 나무 막대기 일 뿐…이런 식이다..

 

그 선배님은 시원 시원하면서도 모든 사람들에게 진심을 다하여 잘 대해주고 대인관계가 좋아서 포병대의 장병 모두가 다 좋아했고, 의사가 아닌데도 엄청 주사도 잘 놓고 치료도 잘한다고 소문이 나서 포사령관이 군의관 군의관 하면서 선배만 찾았다고 한다. 그래서 사단 의무대에서 의무대대장이 새로 군의관이 왔으니 진짜 군의관을 보내준다고 해도 포사령관님은 지금의 윤중위가 마음에 꼭 들고 너무 좋아서 진짜 의사이건 무엇이건 다른 사람은 필요없다고 거절한다는 소문이었다.

 

나는 이것을 보고 우리가 살아가는데는 학력이나 실력도 중요하겠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인관계를 형성해가는 그 사람의 사회성, 즉 인간됨이나 성품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10. 돌팔이 군의관

 

부임한 다음날, 하루가 지나고  날이 어두워지자 일 나갔던 장병들이 저녁식사 후 '아픈 사람 모여' 해서 줄지어 의무대로 모여들었다. 그런데 첫날밤에 약제병이 내게 "군의관님, 아픈 애들 진단하고 처방 좀 해 주시죠!" 하는게 아닌가?.. 그 때 약제병은 서울대 문리대 정치과를 다니다 군대에 와서 틈만 나면 고시공부를 하고 있다던, 나와 같은 73학번 정상병이었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졸지에 돌팔이 의사가 된 것이다.

 

당황한 나는 '내가 업무를 파악할 동안 며칠간만 너희 들이 알아서 하라' 고 하고 옛날 처방전 뭉텡이를 들고 비오큐에 들어박혀 그것들을 들여다보며 공부를 시작했으나, 대부분의 처방전이 군의관과 약제병 간의 약속처방으로 약자로 쓰여 있어 알수가 없었다. 예를 들면 NB 2t tid pc x 3d.. 이게 뭔 소리인고? (소화불량인 환자에게 sodium bicarbonate 2정씩 하루 식후 세번 복용 하도록 3일분을 처방) 처방 따위이다. Why NB? 아마도 누군가가  Sodium  bicarbonate, 중탄산나트륨 정 (중조 또는 소다) 을 영어의 Sodium 대신 독일식으로 Natrium 으로 읽은 뒤, Natrium bicarbonate? 를  'NB' 로 약자로 줄여 써서 처방하기 시작하자 그 뒤 누구나 이딴 식으로 계속 답습하여 그대로 사용을 하게 된 것 같았다. 별 것도 아닌 것을 말도 안되는 억지 영어로 써놓고 헷갈리게 만드는 것이 당시 군대의 처방방식 이었다.

 

나는 체면상,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고 이틀간 열심히 그동안의 옛 처방전들을 공부하고 드디어 대충 이치를 깨달은 후, 사흘 째부터 환자를 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틈틈히 생리학, 약물학, 병리학 책들을 다시 읽기 시작하였다. 모든 일이 알고 보면 별거 아니지만 모를 때에는 정말 힘든 것 같다.

 

이때에 휴가를 갔다오는 사병들 중에 성병에 걸려 오는 이들이 종종 있었는데 요도염이나 임질의 경우 먹는 항생제도 듣지만 매독같이 지독한 병의 경우에는 커다란 주사기에 우유 빛깔의 벤자친 페니실린 150만 단위씩을 양쪽 엉덩이에 맞아야했는데 이 주사는 맞고 나면 그 주사부위가 매우 아파서 통증 때문에 사병들이 며칠을 잘 못 걸을 정도였다. 그래서 위생병들은 마음에 안드는 사병들이 오면 그에게 비피 (벤자친 페니실린, Benzathine Penicillin, BP or, Penicillin G) 를 한방 놓아주자고 농담을 하였다. 그러나 믿거나 말거나, 50 여년이 지난 오늘날, 미국이나 캐나다같은 선진국에서도 매독에는 아직도 이 약이 유일한 특효약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때에는 치료도 엉터리여서 환자가 배가 아프다고 의무대에서 오면 배 위에다 빨간 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주면서 환자를 골려준다거나 하는 어처구니 없는 짓도 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예전부터 전통적으로, 위생병들은 환자들에게 무슨 약인지 알려주기 싫어서 그랬는지 처방한 모든 약을 한꺼번에 mortar 에 넣고 갈아서 가루로 만든 다음 정사각형의 작고 얇은 흰 미농지를 반으로 접어 그 안에 한 스푼씩 집어 넣고는 다시 그 종이를 다섯 번을 접어서 작은 오각형 약봉지로 만들어 환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어느날 테트라싸이클린을 갈아 넣은 약을 먹고는 한 병사가 질식 할 듯이 캑캑거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왜 그러지하며, 설마 하고 내가 살짝 맛을 보았는데 그 약은 정말 냄새만 맡아도 토할 정도로 그 맛이 무지무지하게 썼다. 약을 처방 조제만 했지 실제로 복용해 보지 않았던 나는 약을 스스로 맛보고서야 비로소 환자의 기막힌 심정을 알수 있게 되었고 삼킬 수 없이 쓴맛을 감추기 위해 그 약을 코팅하여 정제로 만든 까닭을 알게 되었다. 그 후 나는 약제병에게 테트라싸이클린의 노란 당의정을 비롯한 모든 알 약들을 굳이 갈지 말고 그대로 섞어 넣어 조제하라고 하였다.

 

또 그 때에는 잘 못 먹고 잘 못 씻어서 그랬는지, 왜 그렇게 부스럼과 같은 피부병 환자가 많았는지 모르겠다. 항생제를 투약하기 보다 아직 덜 곪았다고 뽀드락지 환자에게 막걸리를 먹여 더 빨리 곪게하는가 하면 잘 곪아서 화농부위를 터뜨릴 때가 된 환자는 위생병들이 벼르고 있다가 D - day 날짜를 잡았다. 그리고는 위생병 여러명이 환자가 발버둥치지 못하게 한명씩 사지를 붙잡고는 나머지 한 명이 달려들어, 물론, 마취제가 없었으니 마취도 안하고 심하게 곪은 환자의 엉덩이나 등짝의 환부를 메스로 십자로 가르른 후, 환부의 고름을 쥐어짰다. 그러면 병사는 아파서 소리 소리 질렀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고 환부에 치메로살에 담갔다 불로 소독한 거즈를 우겨넣어야 상처가 빨리 잘 아문다고 해서 의무대에서는 이따금 사병들과 의무병들 간에 황야의 결투와도 같은 비장한 대결이 일어났다. 그래서 한밤중에 고요한 전방의 고즈넉한 정적을 깨고 "사람 살려" 하며 소리치는 단말마의 비명이 돼지 멱따는 소리처럼 울려퍼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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