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군대 생활 1. 국군군의학교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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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군대 생활 1. 국군군의학교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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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군대생활

 

1. 국군군의학교시절, 한 방의 동기들

 

1977년 3월, 대학 졸업과 동시에 육군 소위로 임관한 후 대구 군의학교에서 16 주간 병과교육을 받았다.

그 당시 우리는 소위 계급장은 달았지만 아직 병과 교육 중이었기 때문에 한 방에 병상용 스프링 침대가 6개 내지 8개가 들어가 있는 방에서 함께 단체생활을 하며 지냈는데, 개개인 각각의 침대가 주어졌지만 장교숙소라기보다 내무반, 또는 기숙사에 가까운 곳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한달이 지난 후 부터 주말이면 외박을 나가게 되었지만, 주말의 그 자유가 그리운 피교육생 신분이었다.


그 당시 함께 방을 썼던 동기들로는 성격이 활달하고 호방하며 남자다운 성균관대 출신의 최완용과, 서울 시립 산업대 출신이며 나의 고등학교 동기인 수의사 이선수, 국민대 출신인 은근히 잘 웃기는 최문진, 얼굴이 희고 잘생기고 얌전한  동국대 출신의  김학영, 또 마음씨가 너그러운 이석호 등이 있었는데 모두들 재미있고 엉뚱하고 독특한 친구들이었다. 공부만 알고 선생님 말씀만 잘 듣던 얌전했던 나에게는 이들과의 만남은 세상에는 이렇게 다양한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신선한 충격이었고 그들과 인연을 맺으며  내가 알지 못하던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되어 즐겁고 유쾌하고 재미있었다.


예를 들면, 최완용 소위는 만난지 얼마 안되었을 때에 우리들에게 “재박이는 올해 성적이 .. 어쩌구...“ 하며 “재박이, 재박이..”  하길래, 우리는 그가 아마 자기와 아주 가까운 친구 중에 재박이라는 운동선수가 있나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 그는 당시 그 유명하던 야구선수 김재박을 말하는 것이었고 그가 김재박선수와  막역한 친구사이가 아니라 그냥 그의 광팬이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야구선수 김재박의 년도별 야구성적은 물론 일신상의 사생활에 대한 것까지 모조리 자세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었으며 야구에 관한 한 거의 모든 것, 야구 규칙은 물론  수많은 야구 선수들의 이름, 소속팀,생년월일은 물론, 몇년도 타율, 출루율, 투수의 방어율 등등 모든 기록들을 야구해설가가 저리가라할 정도로 좔좔 꿰고 있었다.


그는 또 같은 과 여학생과 열애 중이어서 우리들의 부러움을 샀었다. 키가 크고 홀쭉하던 이선수 소위는 클래식 기타를 잘쳐서 우리가 지쳤을 때 또는 잠 들기 전에 조용히 로망스와 같은 잔잔한 음악을 연주해 주던 얌전한 동기였고 나중에 연애하던 애인과 결혼하여 처가식구들을 따라 호주로 이민을 갔다고 들었다.

 

그 당시 내가 겪었던 일을 중에 하도 황당하여 아직도 기억나는 일 중의 하나는 어느날, 우리가 하루 종일 힘든 야외 훈련을 하고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하고 샤워를 마친 후 모두 일찍 잠들려 하는데, 한 친구가 (누구라고 굳이 밝히지는 않겠다) 갑자기 우리들에게 클리넥스를 한장씩 나누어주더니 “야, 이제부터  딸X 이를 치는데 누가 끝까지 가장 오래하는지 내기하기다” 라고 하여 나를 경악시킨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로 군중심리랄까, 그 분위기에 취해서 모두들 낄낄대며 함께 일을 치루었는데 이런 것이 혈기 방장한 한국의 젊은이들이 군대에서, 한 내무반에서 동기들과 있을 때에만 일어날 수 있는 황당한 일이 아니었을까.


또한 우리는 한 내무반에서 잠 자기 전에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외박을 갔다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서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 중 생각나는 이야기는 동기 한명이 어느 주말에 외박을 나가서 술을 마시다 우연히 초면에 어떤 여자와 합석을 하게 되었고 통행금지에 쫒겨 여관에 들어가 하룻밤 만리장성을 쌓았는데 다음날, 헤어지면서 그 여자가 대한민국의 육군 소위는 어떤 맛?인가 하여 자기가 일부러 꼬셨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고 하여 여자에 대해 숙맥이던 나를 기절시킨 적이 있다. 

 

또한 우리 내무반은 아니었지만, 기억에 남는 동기로는 배덕규와 김건남이 있는데 배덕규 소위는 눈이 특히 작아서  웃으면 눈이 없어져 보이지 않았고 내무반 침상에서 관물대 꼭대기에 두 발을 올리고 거꾸로 엎어진 자세로 팔굽혀펴기를 50개씩하는 황소같은 친구였다. 그는 진주인가 마산인가 씨름꾼 아들만 7형제인 집안출신의 장사였다. 제대하고 그가 시작한 서울 강북의 약국을 방문했었는데 갓 신혼이던 그는 조제 상담으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친구가 찾아 왔다고 만사를 제쳐놓고 나에게 한상 떡 벌어진 저녁을 대접해주어 내가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했던 기억이 있다.

 

또한 성균관대 출신의 김건남 소위는 땅딸막 하고 얼굴에 여드름이 조금 나있던 소년같은 모습이었지만 배짱도 두둑하고 행동 또한 독특하여 중대장님이나 상관 누가 부르면 점호시간에도 “아야, 건남이” 하고 대답하며 관등성명을 대어 우리를 웃게 만든 친구였다. 그는 3군단에서 205 이동외과병원 약국장으로 일하면서 같은 3군단 예하 102 야전병원에서 근무한 나와 같은 군단에서 복무하였고 내가 한번 어느 주말에 약속도 없이 찾아가 신세를 진 적이 있다. 나중에 제대하고 그를 내가 잘 아는 선배가 하시던 오퍼상에 소개해주었더니 나에게 신세를 졌다고 자기 집으로 초청하여 식사를 대접한 적이 있다. 


지난 2017 년에 서울에 갔을 때, 같은 의정병과이며 나와 대학 동기인 홍효신 군의 안내로 헤어진지 40년만에 처음으로, 군의학교 한 내무반에서 인생의 황금기인 이십대 초반의 넉달을 함께 보냈던 이 친구들을 만났었다. 모두들 몸이 살짝 불었을 뿐, 머리칼도 염색을 하였는지 흰머리칼도 하나 없이 모두 검은색이었으며 얼굴도 팽팽하니 주름살도 없었고, 그 동안 하나도 변한 것 없이 40 여년 전 옛날 모습 그대로여서 깜짝 놀랐다. 또한, 모두들 건강하고 아직 현역에서 열심히 활약하고 있어 반가웠고 그 시절의 추억들, 옛날 이야기들을 하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히히거리며 즐겁게 웃을 수 있었다.

 

서울에 있는 동기들은 옛날 그때를 생각하며 아직도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다고… 친구는 역시 옛 친구. 그리운 친구들을  만나 허물 없이 웃고 떠들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하고 기쁜 일이며 또.. 부러운 일이다.


2. 군의학교 시절, 주말의 외출, 외박

 

대부분의 친구들은 주말 외박을 맞으면 거의 모두가 애인이나 가족들을 만나려고 급행열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거나 했지만 나는 서울에 가도 편찮으신 아버지와 대학생인 동생 외에는 반겨줄 가족들도 별로 없고 해서 가끔은 서울에 가지 않은 대학 동기인 박광준 군과 함께  대구 시내에 나가 거대하기로 이름난 온천탕, 대구의 공동목욕탕에 가거나 영화를 보거나 아니면 포항 등 대구 근처의 지방으로 구경을 다녔다.

이때에 어느 주말, 최문진, 김학영 소위와 불교신자들이던 간호장교 후보생들하고 경주 불국사와 토함산, 석굴암에 갔었던 기억이 난다.

 

또한, 어느 주말엔가 박광준 군이 진주에 살던 서울약대 동창생인 여학생 이계정 양의 집에 가 보자고 하여 연락도 안하고 주소도 없이, 말로만 들었던 그의 기억을 더듬어 진주 교외의, 멀리서도 바라보이는 커다란 사이프러스 소나무 세 그루가 서 있는 포도밭 과수원 집에 불쑥 찾아갔던 일이 기억난다. 요사이 같으면 말도 안되는 일이 겠지만, 그 당시만해도 세상 사람들은 인심도 좋았고 또 계정이 아버님께서는매우  관대하고 너그러우신 분이셨다.

 

이 무모하고 황당한 방문에도 계정이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대학 동창 친구들이라는 계정이의 소개 말 한 마디에 반가와하시며 뒷방 하나를 내어 주시고 밥을 차려주라고 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대구에서 외박 나온 떠꺼머리 육군 소위 두명이 그 과수원집 에서 하루 밤을 신세졌었다.

 

그 때는 군인이라서 얼굴도 두꺼웠는지, 어떻게 그리 염치도 없고 뻔뻔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겸연쩍고 미안하다.

 

또 한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군의학교 뒷문에 식당 겸 술집이 있었는데 그 집에 가면 ROTC 14기가 기증한 커다란 거울을 볼 수 있었는데, 선배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교육을 마치고 군의학교를 떠나면서 술집에는 큰 거울을 선사하였으나 정작 군의 학교에는 아무 선물도 남기지 않았다고... 하여 실소하였던 기억이 난다.

 

3. 군대에서 절에 다니게 된 까닭

 

오자진 동기의 도움을 받아 군의학교 우리 내무반에서 함께 생활했던 동기들의 이름을 모두 찾아 내었다. 전에 말한대로 최완용, 이선수, 최문진, 배덕규, 그리고 말없이 과묵 하며 순하고 착해보이는 강원대의 이석호, 예쁘장하게 잘 생겼던 동국대의 김학영, 그리고 나 이렇게 일곱명이었던 것 같다. 나는 김학영, 최문진 소위와는 함께 절에 다녔었던 것 같고 그래서 간호장교 후보생들과 함께 불국사에 관광갔었던 사진이 남아있다.

 

내가 절에 다니게된 이유는 후보생 시절, 여름 동원 훈련때, 일요일에 내무반에 있으면 하루 종일 밖으로 불려나가 사역을 해야하는데, 절이나 교회에 가면 사역에서 빠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그 얄팍한 계산에서, 나를 포함한 많은 후보생들이 진짜 신자도 아니면서 교회나 절에 간다고 지원했었다. 그런데 교회에 가는 첫 일요일 오전에 집합하고 보니 교회로 간다는 후보생들이 절에 간다는 숫자보다 훨씬 많았다.

 

나도 교회에 간다고 교회에 가는 줄의 뒤에 쭐레쭐레 서 있었는데 우리를 인솔하시던 중대장님이 우리가 선 줄의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갑자기 "야, 보기 싫다, 거기, 교회 쪽 긴 꼬리의 그 뒷줄들,  끊어 맞추어 ! " 하시는 바람에 교회에 가려고 줄 서있던 뒷줄의 아이들이 끊어져, 길고 짧던 두개의 직사각형의 대열이 정사각형으로 변하면서 절에 가는 쪽으로 고쳐 서게 되었다. 그래서 황당하게도, 하느님을 만나러 교회에 가려던 애들이 졸지에 부처님을 만나러 가게 되었는데, 누구도 감히 무어라고 항의하지 못했고, 어차피 교회나 절에 가는 것이 예배나 예불을 드리러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기에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교회에 가 보려다 졸지에 절에 가서 떡도 얻어먹고 과일도 얻어 먹고 했는데, 그러다 보니 법사님의 설법도 괜찮고 해서 군의학교에서도 계속 절에 가게되었고 나중에 전방에서 병원에서 근무할 때에는 간호장교들과 일요마다 함께 절에 가는 재미에, 급기야 불 붙인 향 세개로 팔뚝을 지지며 신앙을 맹세하는 수계까지 받았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캐나다로이민 온 후 장모님의 인도로, 나는 그만  천주교 신자가 되고 말았다.

 

또 한번은 어느 토요일, 외박 나갔던 우리 동기들 여럿이 서울행 기차를 기다리면서 식당에서 밥을 먹었는데 그때 다른 한쪽에서 우리 동기 한 명이, 그를   찾아오신  아버님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식사를 마치고 밥값을 계산하려고 하니 그 많은 우리의 밥값을 그 아버님께서 우리는 눈치 채지도 못하게 슬며시 이미 다 지불하고 가셨다고... 식당 주인이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친구, 인하대 출신의 김선정군과 그 아버님께 우리는 놀라고 미안하고 감사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에는 영문을 잘 몰랐었는데, 내가 자식을 낳아 키우면서 이제 돌이켜 생각해보니, 듬직하고 자랑스러운 아들에게 무엇이든 해 주고 싶고, 그러다보니 그의 친구들도 모두 예뻐보였던 것, 그것이 그 아버님의 그 당시의 마음이 아니셨을까 짐작해 본다. 예나 지금이나 자식에게 무엇이든 한없이 베풀고싶은 부모의 마음은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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