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군대 생활 1. 국군군의학교시절

동기회고록

홈 > 참여마당 > 동기회고록
동기회고록

나의 군대 생활 1. 국군군의학교시절

0 1043

나의 군대생활

 

1. 국군군의학교시절, 한 방의 동기들

 

1977년 3월, 대학 졸업과 동시에 육군 소위로 임관한 후 대구 군의학교에서 16 주간 병과교육을 받았다.

그 당시 우리는 소위 계급장은 달았지만 아직 병과 교육 중이었기 때문에 한 방에 병상용 스프링 침대가 6개 내지 8개가 들어가 있는 방에서 함께 단체생활을 하며 지냈는데, 개개인 각각의 침대가 주어졌지만 장교숙소라기보다 내무반, 또는 기숙사에 가까운 곳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한달이 지난 후 부터 주말이면 외박을 나가게 되었지만, 주말의 그 자유가 그리운 피교육생 신분이었다.


그 당시 함께 방을 썼던 동기들로는 성격이 활달하고 호방하며 남자다운 성균관대 출신의 최완용과, 서울 시립 산업대 출신이며 나의 고등학교 동기인 수의사 이선수, 국민대 출신인 은근히 잘 웃기는 최문진, 얼굴이 희고 잘생기고 얌전한  동국대 출신의  김학영, 또 마음씨가 너그러운 이석호 등이 있었는데 모두들 재미있고 엉뚱하고 독특한 친구들이었다. 공부만 알고 선생님 말씀만 잘 듣던 얌전했던 나에게는 이들과의 만남은 세상에는 이렇게 다양한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신선한 충격이었고 그들과 인연을 맺으며  내가 알지 못하던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되어 즐겁고 유쾌하고 재미있었다.


예를 들면, 최완용 소위는 만난지 얼마 안되었을 때에 우리들에게 “재박이는 올해 성적이 .. 어쩌구...“ 하며 “재박이, 재박이..”  하길래, 우리는 그가 아마 자기와 아주 가까운 친구 중에 재박이라는 운동선수가 있나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 그는 당시 그 유명하던 야구선수 김재박을 말하는 것이었고 그가 김재박선수와  막역한 친구사이가 아니라 그냥 그의 광팬이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야구선수 김재박의 년도별 야구성적은 물론 일신상의 사생활에 대한 것까지 모조리 자세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었으며 야구에 관한 한 거의 모든 것, 야구 규칙은 물론  수많은 야구 선수들의 이름, 소속팀,생년월일은 물론, 몇년도 타율, 출루율, 투수의 방어율 등등 모든 기록들을 야구해설가가 저리가라할 정도로 좔좔 꿰고 있었다.


그는 또 같은 과 여학생과 열애 중이어서 우리들의 부러움을 샀었다. 키가 크고 홀쭉하던 이선수 소위는 클래식 기타를 잘쳐서 우리가 지쳤을 때 또는 잠 들기 전에 조용히 로망스와 같은 잔잔한 음악을 연주해 주던 얌전한 동기였고 나중에 연애하던 애인과 결혼하여 처가식구들을 따라 호주로 이민을 갔다고 들었다.

 

그 당시 내가 겪었던 일을 중에 하도 황당하여 아직도 기억나는 일 중의 하나는 어느날, 우리가 하루 종일 힘든 야외 훈련을 하고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하고 샤워를 마친 후 모두 일찍 잠들려 하는데, 한 친구가 (누구라고 굳이 밝히지는 않겠다) 갑자기 우리들에게 클리넥스를 한장씩 나누어주더니 “야, 이제부터  딸X 이를 치는데 누가 끝까지 가장 오래하는지 내기하기다” 라고 하여 나를 경악시킨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로 군중심리랄까, 그 분위기에 취해서 모두들 낄낄대며 함께 일을 치루었는데 이런 것이 혈기 방장한 한국의 젊은이들이 군대에서, 한 내무반에서 동기들과 있을 때에만 일어날 수 있는 황당한 일이 아니었을까.


또한 우리는 한 내무반에서 잠 자기 전에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외박을 갔다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서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 중 생각나는 이야기는 동기 한명이 어느 주말에 외박을 나가서 술을 마시다 우연히 초면에 어떤 여자와 합석을 하게 되었고 통행금지에 쫒겨 여관에 들어가 하룻밤 만리장성을 쌓았는데 다음날, 헤어지면서 그 여자가 대한민국의 육군 소위는 어떤 맛?인가 하여 자기가 일부러 꼬셨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고 하여 여자에 대해 숙맥이던 나를 기절시킨 적이 있다. 

 

또한 우리 내무반은 아니었지만, 기억에 남는 동기로는 배덕규와 김건남이 있는데 배덕규 소위는 눈이 특히 작아서  웃으면 눈이 없어져 보이지 않았고 내무반 침상에서 관물대 꼭대기에 두 발을 올리고 거꾸로 엎어진 자세로 팔굽혀펴기를 50개씩하는 황소같은 친구였다. 그는 진주인가 마산인가 씨름꾼 아들만 7형제인 집안출신의 장사였다. 제대하고 그가 시작한 서울 강북의 약국을 방문했었는데 갓 신혼이던 그는 조제 상담으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친구가 찾아 왔다고 만사를 제쳐놓고 나에게 한상 떡 벌어진 저녁을 대접해주어 내가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했던 기억이 있다.

 

또한 성균관대 출신의 김건남 소위는 땅딸막 하고 얼굴에 여드름이 조금 나있던 소년같은 모습이었지만 배짱도 두둑하고 행동 또한 독특하여 중대장님이나 상관 누가 부르면 점호시간에도 “아야, 건남이” 하고 대답하며 관등성명을 대어 우리를 웃게 만든 친구였다. 그는 3군단에서 205 이동외과병원 약국장으로 일하면서 같은 3군단 예하 102 야전병원에서 근무한 나와 같은 군단에서 복무하였고 내가 한번 어느 주말에 약속도 없이 찾아가 신세를 진 적이 있다. 나중에 제대하고 그를 내가 잘 아는 선배가 하시던 오퍼상에 소개해주었더니 나에게 신세를 졌다고 자기 집으로 초청하여 식사를 대접한 적이 있다. 


지난 2017 년에 서울에 갔을 때, 같은 의정병과이며 나와 대학 동기인 홍효신 군의 안내로 헤어진지 40년만에 처음으로, 군의학교 한 내무반에서 인생의 황금기인 이십대 초반의 넉달을 함께 보냈던 이 친구들을 만났었다. 모두들 몸이 살짝 불었을 뿐, 머리칼도 염색을 하였는지 흰머리칼도 하나 없이 모두 검은색이었으며 얼굴도 팽팽하니 주름살도 없었고, 그 동안 하나도 변한 것 없이 40 여년 전 옛날 모습 그대로여서 깜짝 놀랐다. 또한, 모두들 건강하고 아직 현역에서 열심히 활약하고 있어 반가웠고 그 시절의 추억들, 옛날 이야기들을 하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히히거리며 즐겁게 웃을 수 있었다.

 

서울에 있는 동기들은 옛날 그때를 생각하며 아직도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다고… 친구는 역시 옛 친구. 그리운 친구들을  만나 허물 없이 웃고 떠들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하고 기쁜 일이며 또.. 부러운 일이다.


2. 군의학교 시절, 주말의 외출, 외박

 

대부분의 친구들은 주말 외박을 맞으면 거의 모두가 애인이나 가족들을 만나려고 급행열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거나 했지만 나는 서울에 가도 편찮으신 아버지와 대학생인 동생 외에는 반겨줄 가족들도 별로 없고 해서 가끔은 서울에 가지 않은 대학 동기인 박광준 군과 함께  대구 시내에 나가 거대하기로 이름난 온천탕, 대구의 공동목욕탕에 가거나 영화를 보거나 아니면 포항 등 대구 근처의 지방으로 구경을 다녔다.

이때에 어느 주말, 최문진, 김학영 소위와 불교신자들이던 간호장교 후보생들하고 경주 불국사와 토함산, 석굴암에 갔었던 기억이 난다.

 

또한, 어느 주말엔가 박광준 군이 진주에 살던 서울약대 동창생인 여학생 이계정 양의 집에 가 보자고 하여 연락도 안하고 주소도 없이, 말로만 들었던 그의 기억을 더듬어 진주 교외의, 멀리서도 바라보이는 커다란 사이프러스 소나무 세 그루가 서 있는 포도밭 과수원 집에 불쑥 찾아갔던 일이 기억난다. 요사이 같으면 말도 안되는 일이 겠지만, 그 당시만해도 세상 사람들은 인심도 좋았고 또 계정이 아버님께서는매우  관대하고 너그러우신 분이셨다.

 

이 무모하고 황당한 방문에도 계정이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대학 동창 친구들이라는 계정이의 소개 말 한 마디에 반가와하시며 뒷방 하나를 내어 주시고 밥을 차려주라고 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대구에서 외박 나온 떠꺼머리 육군 소위 두명이 그 과수원집 에서 하루 밤을 신세졌었다.

 

그 때는 군인이라서 얼굴도 두꺼웠는지, 어떻게 그리 염치도 없고 뻔뻔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겸연쩍고 미안하다.

 

또 한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군의학교 뒷문에 식당 겸 술집이 있었는데 그 집에 가면 ROTC 14기가 기증한 커다란 거울을 볼 수 있었는데, 선배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교육을 마치고 군의학교를 떠나면서 술집에는 큰 거울을 선사하였으나 정작 군의 학교에는 아무 선물도 남기지 않았다고... 하여 실소하였던 기억이 난다.

 

3. 군대에서 절에 다니게 된 까닭

 

오자진 동기의 도움을 받아 군의학교 우리 내무반에서 함께 생활했던 동기들의 이름을 모두 찾아 내었다. 전에 말한대로 최완용, 이선수, 최문진, 배덕규, 그리고 말없이 과묵 하며 순하고 착해보이는 강원대의 이석호, 예쁘장하게 잘 생겼던 동국대의 김학영, 그리고 나 이렇게 일곱명이었던 것 같다. 나는 김학영, 최문진 소위와는 함께 절에 다녔었던 것 같고 그래서 간호장교 후보생들과 함께 불국사에 관광갔었던 사진이 남아있다.

 

내가 절에 다니게된 이유는 후보생 시절, 여름 동원 훈련때, 일요일에 내무반에 있으면 하루 종일 밖으로 불려나가 사역을 해야하는데, 절이나 교회에 가면 사역에서 빠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그 얄팍한 계산에서, 나를 포함한 많은 후보생들이 진짜 신자도 아니면서 교회나 절에 간다고 지원했었다. 그런데 교회에 가는 첫 일요일 오전에 집합하고 보니 교회로 간다는 후보생들이 절에 간다는 숫자보다 훨씬 많았다.

 

나도 교회에 간다고 교회에 가는 줄의 뒤에 쭐레쭐레 서 있었는데 우리를 인솔하시던 중대장님이 우리가 선 줄의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갑자기 "야, 보기 싫다, 거기, 교회 쪽 긴 꼬리의 그 뒷줄들,  끊어 맞추어 ! " 하시는 바람에 교회에 가려고 줄 서있던 뒷줄의 아이들이 끊어져, 길고 짧던 두개의 직사각형의 대열이 정사각형으로 변하면서 절에 가는 쪽으로 고쳐 서게 되었다. 그래서 황당하게도, 하느님을 만나러 교회에 가려던 애들이 졸지에 부처님을 만나러 가게 되었는데, 누구도 감히 무어라고 항의하지 못했고, 어차피 교회나 절에 가는 것이 예배나 예불을 드리러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기에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교회에 가 보려다 졸지에 절에 가서 떡도 얻어먹고 과일도 얻어 먹고 했는데, 그러다 보니 법사님의 설법도 괜찮고 해서 군의학교에서도 계속 절에 가게되었고 나중에 전방에서 병원에서 근무할 때에는 간호장교들과 일요마다 함께 절에 가는 재미에, 급기야 불 붙인 향 세개로 팔뚝을 지지며 신앙을 맹세하는 수계까지 받았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캐나다로이민 온 후 장모님의 인도로, 나는 그만  천주교 신자가 되고 말았다.

 

또 한번은 어느 토요일, 외박 나갔던 우리 동기들 여럿이 서울행 기차를 기다리면서 식당에서 밥을 먹었는데 그때 다른 한쪽에서 우리 동기 한 명이, 그를   찾아오신  아버님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식사를 마치고 밥값을 계산하려고 하니 그 많은 우리의 밥값을 그 아버님께서 우리는 눈치 채지도 못하게 슬며시 이미 다 지불하고 가셨다고... 식당 주인이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친구, 인하대 출신의 김선정군과 그 아버님께 우리는 놀라고 미안하고 감사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에는 영문을 잘 몰랐었는데, 내가 자식을 낳아 키우면서 이제 돌이켜 생각해보니, 듬직하고 자랑스러운 아들에게 무엇이든 해 주고 싶고, 그러다보니 그의 친구들도 모두 예뻐보였던 것, 그것이 그 아버님의 그 당시의 마음이 아니셨을까 짐작해 본다. 예나 지금이나 자식에게 무엇이든 한없이 베풀고싶은 부모의 마음은 그런 것 같다.

0 Comments
Hot

인기 나의 군대생활 19

댓글 0 | 조회 1,075
37. 17기 후배, 교육장교 김재성 나는제대 후 몇 년 만에 내가 근무했던102 야전병원으로예비군 동원훈련을 하러 간 적이 있었다.이때에 훈련을 마친 후 하루를 더 머물렀고아직 그곳에서 근무하던 옛 동료들도 만나고… 더보기
Hot

인기 나의 군대생활 18

댓글 0 | 조회 955
34. 검사와 병사 군단에도검찰관이 한사람 있었는데K 검사라고 나의 고등학교 1년 선배였다. 군대이지만 고등학교 선배들을 나는 형이라고불렀는데 그 형은 매우 샤프하고 똑똑한 분이었다.그 당시, 소위 말하는 고등고시는… 더보기
Hot

인기 나의 군대생활 17

댓글 0 | 조회 958
33.낙동강 오리알과 사마리아인 어느토요일 점심시간 퇴근할 무렵,야전 병원 안의 한쪽에 자리 잡고 있던창(倉: 군대에서의약품을 보관하고 예하의 하급부대에 의약품을 배급하는 기관, 창고)에 들렀는데 전방 사단 의무대에… 더보기
Hot

인기 나의 군대생활 16

댓글 0 | 조회 956
32. 내 새 군화를 신고 휴가 간 약제병 어느날약제병 천상병이 휴가를 나갔다.그런데 내가 분창에서 쿠폰을 주고 사다가닦아서 약제과 사무실,내 책상 밑에 잘 모셔 놓았던, 나는 개시도 안한 새 군화가 없어졌다. (이… 더보기
Hot

인기 나의 군대생활 15

댓글 0 | 조회 1,111
30. 간호장교와 포경수술 국군간호 사관학교출신의 간호장교들은 대부분 남자 사병들을 능숙하게 다룰 정도로 기가 세고 거친 편이었으나 수술실의 수술 보조 간호사인 (보통 수술하는 집도의 의사 곁에서 의료기기를집어주거나… 더보기
Hot

인기 나의 군대생활 14

댓글 0 | 조회 946
29. 한밤중에 플래쉬 라이트로 물고기 잡은 이야기 그때진료부장이었던 내과 군의관 모모소령은 조금은 엉뚱하고도 재미있는 특이한 분이셨다. 예를 들면, 처방 조제로 한참 바쁜 어느날 아침 나절에 진료부장님이 급한 일로… 더보기
Hot

인기 나의 군대생활 13

댓글 0 | 조회 925
27. 전임 약제과장에 관한 소문 내가부임했을 당시 나보다 한참 전에 봉직했던 전임 약제과장에 대한 이야기들이 소문으로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었다. 그분은 모 대학 약대룰 졸업하신 ROTC 출신이었다는데 무슨 이유에서… 더보기
Hot

인기 나의 군대생활 12

댓글 0 | 조회 959
26. 3군단, 102야전병원으로 전출 1978년 해가 바뀌고 중위로 진급하면서 3군단 본부로 발령이 났다. 나는 이 때에도 정든 사람들과 헤어지는것이 섭섭하여 밤 늦게까지 회식을 하고 다음 날 하루 늦게 출발하여 … 더보기
Hot

인기 나의 군대생활 11

댓글 0 | 조회 952
25. ROTC 단복과 휴가 내가연대에서 사단으로 복귀명령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6개월 이상이 지나갔다. 연대에서 보직이 없는 상태가 계속되면서, (의무중대장 군의관 육순황 대위님이야물론, 내가 의무중대에 있거나말거나… 더보기
Hot

인기 나의 군대생활 10

댓글 0 | 조회 823
24.연대 지휘 능력 측정 훈련 RCT (RegimentCombat Training) 과 삼국지 대대측정도끝나고 11월 말 12월초가 되자 전방에는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한 해를 마감하는 마지막 훈련겸 측정… 더보기
Hot

인기 나의 군대생활 9

댓글 0 | 조회 828
22. 군대에서 쥐약 먹은 이야기 50연대 의무중대에서 근무하던 어느날, 사병들이 덥다고 오렌지 주스를 타 먹고있었다. 그러면서 같이 근무하던, 식품 영양학 전공의 초급대학을 졸업하고가업인 소규모의 식품공장을 이어받… 더보기
Hot

인기 나의 군대생활 8

댓글 0 | 조회 860
19. 포사격 측정에 관한 전설 지난번포사령부 군의관 윤중위님으로 부터 들은 이야기.포병대대에 12기 인가 전설적인 ROTC 선배가한사람 있었다는데 사단에서 포대 대항 포사격 측정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보통 산너머… 더보기
Hot

인기 나의 군대생활 7

댓글 0 | 조회 825
16. 코가 삐뚤어진 병사 벙커공사가한창이던8월 무더운 어느 여름날 점심 때, 갑자기 대대장님의 호출이 있어서 달려가보니 한 병사가 쓰러져 있는데 코가 삐뚤어져 있는 것이었다.질통을 지고 오르던 그 병사는 너무졸립고… 더보기
Hot

인기 나의 군대생활 6

댓글 0 | 조회 920
13. 한 밤중에 완전군장으로 산꼭대기까지 달려가다. 내가 의무지대장으로 취임한지 두 주일도 안되어 대대 전체가 훈련 및 벙커 진지공사를 나가게 되었다. 사정을 잘 모르는 나는 의무대 선임하사에게 모든 일을 의지하여… 더보기
Hot

인기 나의 군대생활 5

댓글 0 | 조회 897
11. 무서운 대대장님과 꼴통 군의관 고백하건대, 지금 생각하면 나는 내가 걱정했던대로 정말 군기가 빠진, 장교 자격이 의심되는 어리숙한 군인이었던 것 같다. 대대에 도착하여 얼마 안된 며칠 후, 비오큐에서 내려오다… 더보기
Hot

인기 나의 군대생활 4

댓글 0 | 조회 1,109
8. 15 사단 50연대 3대대 의무지대장 (군의관) 으로 전출 사단 의무근무대는 별로 할 일도 없어 돌아가며 당직 서는 것 외에는 부대 밖에 나가서 삼시세끼 뜨거운 밥 먹을 먹거나 드물게 수의장교가 얻어오는 고기를… 더보기
Hot

인기 나의 군대생활 3

댓글 0 | 조회 937
5. 15 사단 의무근무대 1977년 6월, 대구의 군의학교에서 4개월 간의 의정병과 전문교육을 수료하고 자대에 배치되었다. 하루 전날밤, 각각 어느 부대로 배치되었다는 소문이 퍼졌고 전방에 배치된다는 소식을 들은 … 더보기
Hot

인기 나의 군대생활 2

댓글 0 | 조회 870
4. 군대에서 홀딱 벗고 뛴 이야기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붉어지는 일이긴 하지만 이건 실제로 군의학교 시절에 일어났던, 내가 죽을 때까지 모자 속에 감추어 두었어야할 나의 흑역사의 한 부분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다 … 더보기
Now

현재 나의 군대 생활 1. 국군군의학교시절

댓글 0 | 조회 1,044
나의 군대생활 1. 국군군의학교시절, 한 방의 동기들 1977년 3월, 대학 졸업과 동시에 육군 소위로 임관한 후 대구 군의학교에서 16 주간 병과교육을 받았다. 그 당시 우리는 소위 계급장은 달았지만 아직 병과 교… 더보기
Hot

인기 그때 그 시절 5

댓글 0 | 조회 881
14. 장기자랑에 능한 관동대학 동기들 훈련의 마지막 주가 되자 쉬는 시간에는 오락도 허락하고 장기 자랑을 하는 시간들이 주어졌는데 숫자가 가장 많은 서울대학교 동기들은 모두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가만히 앉아만 있었… 더보기
카테고리
Banner
  • 글이 없습니다.
최근통계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