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영---------

회보원고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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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원 5 80
 

탈영



1978년 육군 중위로 전방에서 소대장 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제대한 병력의 보충을 위해 신병이 중대에 여남은 명 전입해 왔다.

신병이 새로이 중대에 오면 각 소대에서는 우수한 신병의 확보를 위해 신경을 쓰기 마련이고, 신병이 각 소대에 배치되기 전에 중대에서 여러 날 생활하는 동안에 각 소대 고참병이나 선임하사들은 군 생활을 잘 할 거라고 생각되는 신병을 미리 점 찍어 놓거나 아니면 나름대로 순위를 매겨 놓는다.

전방은 철책 근무에 들어가고 철책 근무 기간 동안의 모든 근무와 취사 등의 생활이 소대 단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후방이나 여타 부대와 달리 각 소대에서는 신병의 확보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 

이 일로 인해 소대장 간에 사이가 틀어지는 경우도 발생되곤 한다.

행동이나 판단이 느린 신병을 배치 받으면 각종 검열이나 측정 시에 지적을 받게 되고 이로 인해 잘 하는 병사를 포함하여 소대 전체가 힘들어 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 소대에서는 신병 보충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중대에 배치 받은 신병 중 유난히 눈에 띄는 병사가 있었다.

체격은 그다지 큰 편이 아니었는데 축구, 복싱, 철봉 등 운동이 만능이었다.

운동을 잘하는 병사는 그만큼 힘든 훈련도 잘 이겨낸다.

게다가 중대 회식 때 보니 춤도 기 막혔고 노래도 일품이었다.

그 당시 한창 유행하였던 김태곤의 ‘망부석’을 불렀는데 한 손엔 반합을 들고 다른 손에는 숟가락을 들고 스스로 장단을 맞추며 부르는 노래 솜씨가 가수를 뺨 칠 정도였다.

그 신병이 노래를 한번 부르고 나면 우렁찬 앵콜 소리가 중대 막사를 뒤흔들곤 했다.


각 소대에서 그 신병을 1순위로 점찍은 건 두말 할 나위도 없었다.

소대장 4명이 모두 양보를 안 하니 중대장이 제안을 했다.

각 소대 대항 체육대회를 열어 우승 순위대로 신병 선택권을 주기로 하였다.

종목은 축구, 배구, 씨름, 릴레이, 복싱 5종목으로 하였고 모두 단체전이었다.

즉 어느 한 병사가 잘해서 순위가 좋아지는 것을 피했고 씨름과 복싱은 체급별로 각 1명씩 총 5명이 출전하게 했다.

5KG 단계로 나누어 55KG 이하, 60KG 이하, 65KG 이하, 70KG 이하, 71KG 이상으로 하였다.

일요일을 택해 풀리그로 하였다.

오전에 축구, 배구, 씨름을 마쳤고 오후에 릴레이, 복싱을 하였다.


내가 이끄는 1소대와 ROTC 1년 후배인 정소위가 이끄는 2소대가 선두를 다퉜다.

3소대와 화기소대는 3, 4위를 다퉜다.

맨 마지막에 열린 복싱 시합에서 1, 2소대가 승패를 가리지 못하고 비겼다.

간부회의가 열렸다.

대표전을 열어 승패를 가리기로 했다.

대표전은 표준 체중인 61KG 이상 65KG 이하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불행하게도 우리 소대에서는 부상자가 속출하여 65KG 이하 급에서는 선수가 없었다.

아무리 찾아도 뛸 만한 선수가 없었다.

배구하다가 손목이 삐거나 축구 시합 도중 발목이 다친 소대원을 내보낼 수는 없었다.

나머지는 체중이 너무 나가거나 또는 미달되었다.

복싱만 이기면 종합 점수에서 1위가 되는데 선수가 없어 2위로 밀려날 판국이었다.

아!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일까?

짧은 시간 동안 생각하다가 소대장인 내가 나가기로 했다.

난 62KG 이었다.

축구에서 타 소대장이 함께 섞여 뛰었다.

씨름, 배구에서 타 소대 선임하사와 소대장이 포함되어 뛰었다.

그러면 복싱에서 내가 나간다고 하여 이상할 것은 없었다.

웃통을 벗고 글러브를 찾았다.

물 주전자로 연병장 바닥에 금을 그어 만든 링 코너에서 나무의자에 앉아 글러브를 꼈다.

상대 코너를 쳐다봤다.

상대방은 키가 나보다 컸고 시합을 대비하여 연습하는 걸 지켜본 적이 있었다. 사회에서 복싱을 했었는지 안 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연습할 때 보니 꽤 잘한다고 느꼈었던 병사였다.

선천적으로 운동 신경이 발달됐고 겨울철에는 스피드 스케이트 대표 선수를 도맡아 뛰던 병사였다.

하지만 나는 단지 복싱을 좋아했을 뿐이었다.

고등학교 때 복싱이 배우고 싶어 선친을 졸랐던 적이 있었지만 코 삐뚤어진다고 허락을 못 받았었다.

그 때의 한을 못 풀어 청계천 체육사에서 복싱 글럽을 사다가 중대에 복싱 붐을 일으켰었다.

지금 상대가 끼고 있는 복싱 글럽도 내가 자비로 부대에 사다 놓은 것이었다.

상대는 선발되어 나왔고 나는 선수가 없어 나온 셈이었다.

하지만 복싱은 안 했어도 나는 대학 때 검도를 했고 3단이지 않는가?

상대의 공격을 보는 눈이 있을 것이고 손도 웬만큼은 스피드가 있을 것이다.

상대방 주먹을 죽도 피하듯 피하면 되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했다.



1회전이 시작되었다.

공이 울리자마자 파고 들어갔다.

상대의 안면에 주먹을 날렸다.

대 여섯대가 그대로 정통으로 들어갔다.

탐색전도 없는 기습 공격이었다. 상대는 방심하다가 그대로 맞은 것이었다.

상대가 키가 커서 안으로 파고들면서 주먹을 위로 날렸다.

땅 바닥에 물 주전자로 금 그어놓은 코너 밖으로까지 상대가 몰리자 앉아서 응원하던 중대원들이 상대를 떠받쳐 금 안으로 다시 밀어 넣었다.

그렇게 1회전이 끝났다.



2회전 때는 치고 받았다.

한참을 치고 받다가 상대의 원 투 스트레이트가 내 안면에 정확히 가격되는 것을 느꼈다.

코를 정통으로 맞은 것이다.

겨자 덩어리를 씹은 것처럼 코가 싸하고 아프더니만 동시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아크릴을 통해 물체를 보듯 상대가 뿌옇게 보였다.

눈물 때문이었다.

2회전이 끝나고 내 코너에 돌아 왔을 때 소대원이 물 묻힌 수건으로 코를 닦아주었다.

닦은 수건이 빨갰다.

콧물이 아니고 피였다.

난 맞는 순간 콧물과 눈물이 동시에 터져 나왔는 줄만 알고 있었다.

런닝셔츠를 보니 앞가슴에도 피가 빨갛게 떨어져 있었다.

말 그대로 혈투를 벌인 것이다.



3회전이 시작되었다.

초반에 있는 힘을 다해서 치고 받았다.

들어가는 주먹도 있었고 스쳐가는 주먹도 있었고 허공을 가르는 주먹도 있었다. 상대도 비슷했다.

중반 이후부터는 거의 공격을 못하고 가쁜 숨만 헐떡였다.

공격할 힘이 모두 소진된 것이다.

나도 못 들어갔지만 상대도 못 들어왔다.

노려보면서 같이 헐떡였다.


공이 울리고 모든 것이 끝났다.

중대 간부의 채점 결과는 또 비겼다.

하지만 중대장이 내 공격력을 높이사서 나에게 우세승을 주었다.

드디어 내 소대가 1등을 했고 신병 선발의 우선권을 쥐게 되었다.

2등을 한 후배 소대장을 쳐다보니 마음이 안쓰러웠다.

그 또한 오늘을 대비하여 열심히 노력하였었고 소대를 열심히 이끌겠다는 의지도 높았었다.

지휘하는 목소리도 우렁찼다.

나는 후배보다 계급도 높고 소대장 생활도 1년을 더했다.

따라서 소대의 통솔도 후배보다는 수월했다.

후배는 신임 소대장으로써 소대 통솔의 어려움이 나보다는 많았을 것이다.

나는 후배가 대대에서 가장 통솔을 잘하는 멋진 소대장 중의 한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랬고 따라서 후배 소대가 우수한 병사들로 구성되기를 원했다.

나는 신병 선발의 우선권을 후배에게 양보키로 결심했고 이 사실을 중대장께 말씀드렸다.

후배는 미안해하면서도 우수한 신병의 확보를 위해 먼저 선발해 갔고 나머지에서 내가 선발을 했다.

‘망부석’을 잘 부르는 신병은 물론 후배 소대로 갔다.

그 후 후배 소대에서의 회식 때는 ‘망부석’을 부르는 노래 소리가 가끔 들려왔고

그럴 때는 그 신병을 못 데리고 온 아쉬움의 소리가 내 소대 고참들 사이에서 나오곤 했다.


세월이 흘러 겨울이 되었다.

돌아가면서 하는 매복이 내 소대 차례가 되었고 영하의 날씨에 1개 분대를 이끌고 임진강으로 매복을 나갔다.

매서운 겨울 강바람이 살을 파고 들었다.

강가에서 밤을 새웠고 새벽녘이 되어서 ‘날개를 접겠다’고 연대에 무전을 띄웠다.

밤사이 굳어진 몸이 펴지질 않았다.

철수 준비 도중에 ‘현 위치에서 날개를 다시 펴라’고 명령이 떨어졌다.

이런 일은 예전엔 한번도 없었었고 돌발 상황이 발생된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아직 어둠이 가시진 않았지만 멀리 군용 트럭이 헤드라이트를 켜고 비상도로를 달리는 것이 보였다.

5분 대기조가 출동하는구나.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조금 있으니까 무장병력을 실은 군용 트럭도 분주하게 오갔다.

무전을 통해 다급하게 교신하는 내용을 종합하니 일정 지역을 포위하는 것이었고 내가 속한 매복조도 그 포위망의 일부가 되었다.

어디에선가 총소리가 계곡을 타고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교전을 하는구나.

긴장 속에서 새벽을 보냈다.

점심때가 되어서 철수 명령이 떨어졌다.


부대에 돌아와서 들은 내용은 이랬다.

대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는 도강을 위해 부교를 만들 때 쓰는 장비를 보관하는 곳이 있었고 그 곳을 후배 소대의 1개 분대가 파견 나가 경비하고 있었다.

그 곳에서 초병이 새벽에 무장 탈영을 한 것이었다.

탈영병은 군 생활을 오래하지 않아서인지 그 곳 지리를 잘 몰랐고 멀리가지는 못하고 인근 산으로 숨어들었다.

포위망을 형성한 군인들이 가끔 허공에 총을 쏴댔고 탈영병은 자기 위치가 노출 되었는 줄 알고 응사를 했다.

이로써 탈영병이 숨어있는 곳이 발각되었다.


소속 소대장이 설득을 했는데 소용이 없었다.

중대장, 대대장도 마찬가지였다.

탈영병은 더 높은 사람 불러오라고 산꼭대기에서 소리 쳤다.

연대장이 ‘무기 버리고 내려와서 얘기하자’고 설득했고 탈영병은 총구를 자신의 턱밑에 겨누고 마치 받들어 총 자세로 산을 내려왔다.

여차하면 자살할 기세였다.

내려오는 탈영병을 헌병대 중사가 몸을 날려 옆에서 덮쳤고 탈영병은 그 순간 방아쇠를 당겼으나 이미 몸이 기울어져 총알은 허공을 향해 날아갔다.

붙잡힌 탈영병은 벌벌 떨었고 떠는 모습을 보니 초라하기 그지없었다고 했다.

바로 전까지는 높은 사람 불러오라고 큰 소리 치던 병사였었다.


이 일로 인해 후배 소대장은 조사 받느라 큰 곤욕을 치뤘었다.

다행히 후배 소대장에게는 처벌이 내려지지 않았다.

지휘가 미치지 않는 파견 나가 있는 동안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었다.

단지 탈영병이 지목한 고참병은 수개월 후 부대에 다시 돌아왔고

그는 그 후 말이 거의 없어졌다.

부대 내에서는 ‘탈영병이 죄를 가볍게 하려고 선한 고참병을 끌고 들어갔다.’고 얘기가 퍼졌었다.

수개월 동안 고생한 고참병은 체육대회 때 나와 복싱으로 혈투를 벌인 후

내가 ‘수고했다’고 등을 두드려준 바로 그 병사였고

탈영병은 신병 때 유난히 눈에 띄던 ‘망부석’을 잘 부르던 병사였다.


탈영병이 내 소대에서 근무를 했었어도 탈영했을 지는 알 수 없으나

때로는 남을 도와주거나 양보하는 마음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화가 피해 가는지도 모르겠다.   끝.


Comments

오자진1D
이세원동기 회보원고 정말 고맙네
근무지가 1사단 아니면 25사단 (?)
난 1사단 공병대대 제3땅굴 관리소대장이었다네
엄기준
그때 그시절 전방 생활이 눈에 선하네~~~
박성렬
세원아..  반갑다.ㅎ
좋은 글 잘 보았다...
임우순
현장감이 있는 글 실로 고마우리.....
최해원
옛생각이 아련 ~~~~ 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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