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철학박사,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명예교수, 前 한국동양예술학회 회장)
한국 가수 최초의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1위, 전 세계스타디움 공연 매진, 빌보드 뮤직 어워드 본상 수상, 유엔총회 연설, "타임”지(誌) 표지, 문화훈장 수상, 그래미 노미네이션 등 지금까지 BTS가 이룩한 일들에는 모두 '한국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다시 말해 우리는 BTS의 모든 행보에서 한국 대중음악계의 역사를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다.
최근에는 BTS 멤버 지민이 한국 솔로 가수 중에는 처음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에서 1위를 차지했다. 지민은 2023년 3월 24일 발매한 첫 솔로 앨범 페이스(FACE) 타이틀곡 ‘라이크 크레이지(Like Crazy)’로 지난 4월 3일(현지시간)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우리나라 솔로 가수 중에 지금까지 가장 높은 순위는 2012년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기록한 2위이다. 그 당시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7주 동안 계속 2위를 유지하는 기록을 남겼다. 그런데 지민은 BTS 멤버의 일환으로 그동안 빌보드 핫100에 1위로 6번 올랐다. BTS는 최근 10년간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에 1위로 가장 많은 곡이 올라간 그룹인데, BTS의 아티스트로써 지민은 그룹과 솔로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는 기록을 세우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BTS가 경이로운 기록을 세울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전세계 언론이 한결같이 지목하는 것은, 바로 그들의 팬덤인 아미(A.R.M.Y. Adorable Representative MC for Youth)이다. 앞에서 여러 번 언급했듯이 이들은 BTS의 음악과 콘텐츠를 소비할 뿐만 아니라 BTS가 음악에 부여한 메시지를 체화(體化)하고 적극적으로 전파한다. 이러한 아미의 강력한 결속력은 BTS에 대한 신뢰와 신념의 바탕에서 열렬한 감성을 공유하면서 나타나는 결과라고 볼 수 있다.(이지행 박사 글 참조)
2018년 5월. 결코 한 문장으로 보기엔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로 구성된 이질적인 해시태그가 트위터에 떴다. #StreamFakeLoveToEndTrump'sAmerica인데, 번역하면 '트럼프의 미국을 끝장내기 원한다면 (BTS의) 'Fake Love'를 스트리밍 하라'이다. 사람들은 이 뜻밖의 해시태그에 어리둥절해 했으나, 마침내 그 의미를 알게 되면서 무릎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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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 (사진=빅히트 뮤직)
그 당시는 BTS의 새 앨범 "LOVE YOURSELF 전(轉) 'Tear'”가 발매된 시기인데, 그 때의 빌보드 앨범 차트는 이미 몇 주 전부터 미국의 백인 래퍼인 포스트 말론(Post Malone)이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포스트 말론의 음악 내용은 마약, 무기력한 멜랑콜리, 패배주의와 냉소주의가 주를 이루고 있었는데, 이러한 부정적 내용은 트럼프가 지배하며 나타나는 미국의 부정적 징후들과 함께 하면서 비판하는 여론들이 형성된다.
이런 것들이 계기가 되어 반 트럼프 주의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또한 흑인의 영혼이 담긴 랩 장르를 영혼 없이 전유(專有)하는 백인 래퍼 포스트 말론에 반감을 가진 흑인 아미들이 이 해시태그를 주도하며 이끌게 된다. 그들은 새 앨범을 낸 BTS가 빌보드 차트에서 포스트 말론을 밀어낼 적임자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 후에 그들은 BTS의 신곡을 선도적(先導的)으로 스트리밍하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Fake Love은 BTS의 세 번째 정규 음반인 "LOVE YOURSELF 전(轉) 'Tear'”의 타이틀 곡이다. 뮤직 비디오가 나온 후 10일 만에 유튜브 1억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고 한다. 2019년 11월 경에는 이탈리아 래퍼인 세이엘(Seiell)의 노래 "Scenne nenne”가 Fake Love를 표절했다는 논란이 퍼져 나갔다. 이에 아미도 해명을 요구하면서 현재 유튜브에서 비공개 처리되었고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에서도 들을 수 없는 상태이다.
위의 사례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국내외의 굵직한 정치적 이슈에 캐스팅 보트로 자리한 BTS와 팬덤 아미의 현재를 보여 준다. 이 두 사건은 그들이 맹렬한 정치적 이해가 부닥치는 자리에서 일종의 상징으로 작용할 만큼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그동안 팬덤 아미는 국내 정치인, 일본 극우세력, 유대인 인권단체 등 결코 녹록치 않은 집단들을 상대로 자신의 스타를 지켜내기 위해 숱하게 부닥치고 싸워 왔다. 팬덤이 정치적 영역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상황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이례적인 사건인 것만은 틀림없다.
팝 음악의 변방으로 여겨졌던 한국의 BTS는 국내 외 굵직한 정치적 이슈의 한가운데서 상징적으로 사용되고 소비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가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작금의 전반적인 문화적 지형에서 BTS는 이와 같이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BTS가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위를 한 것에 축전을 보낸 한국의 대통령이 '꿈을 이룬 아미에게도 축하를 전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이 현상의 중심에 올라선 BTS와 팬덤 아미의 관계는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할 정도의 밀접한 관계가 지속되면서 문화적 사회 현상을 창조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