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철학박사,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명예교수, 前 한국동양예술학회 회장)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 하루 속히 끝나고 평화가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박상진 교수가 지난 두 달여 동안 총 5회에 걸쳐 이야기 하고 있는 러시아는 지정학적 위치에 따른 전략적 상대국으로서의 러시아이다.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당사국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편집자 주)
4차 산업혁명의 성공은 곧 지식기반사회의 선진국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그런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행복과 영광은 한류를 지속 가능하게 할 것이며, 이 때 비로소 대한민국의 위상이 세계 속의 1류 국가로 우뚝 솟을 것이다. 그 첫걸음은 바로 한-중-일의 연횡과 한-미-러의 합종 간의 견제와 균형을 가능하게 할 전략적 대결단이다. 북극항로와 4차 산업혁명을 관통하여 대한민국의 미래를 담보할 "한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제휴(strategic alliance)”가 바로 그것이다
다행히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해 러시아는 내심 중국이나 일본보다는 한국을 선호한다. 게다가 북극항로를 통과하기 위한 쇄빙선 등 특수선박 건조 기술을 세계에서 유일하게 가진 한국과의 협력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1차 북극 야말 가스전 개발을 위해 러시아는 대우조선해양에 특수 LNG 쇄빙선 15척을 주문한 바 있다. 나아가 우리의 조선 기술을 전수 받고 공동생산 체제를 갖출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 기회에 한국은 소형원자로 선박, 무인자율주행선박, 북극항로 모니터링용 드론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이대식 글 참조)
4차 산업혁명의 초기에 새로운 물류가 한국에 열리고 있다는 것은 경제적 강대국이 될 수 있는 두 가지 조건, 즉 ‘물류’와 ‘기술’을 함께 개발할 기회가 열리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두 번째 물류인 ‘데이터 유통’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중국의 마윈은 제2의 석유가 데이터라고 했다. 데이터 물류를 장악하기 위한 최고의 원천 기술은 결국 수학이다.
러시아는 이 부문에서 세계 최고의 수준이다. 러시아의 인재들은 이를 바탕으로 세계적인 수준의 창의적인 알고리즘을 만들어내며 AI 등 4차 산업혁명의 주요 기술 부문에서 수많은 스타트업을 양산하고 있다. 그리고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IT 기업들의 단골 M&A 대상이 되고 있다. 마치 이스라엘 창업단지에 설립된 글로벌 기업의 연구소들이 실상은 이스라엘 스타트업을 인수하기 위한 에이전시 역할을 하듯이, 모스크바에도 러시아 인재들과 스타트업을 확보하기 위한 글로벌 기업의 연구소들이 증가하고 있다. 삼성 등 한국의 대기업들도 예외가 아니다. 러시아 정부는 이 부문에서도 빠르게 성장한 한국 기업의 노하우를 전수받기를 원하고 있다.
물류와 기술에서 한국과 러시아의 협력은 러시아의 다민족성과 개방성, 그리고 한국인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 한국에 대한 지경학(地境學)적 친화성에 의해 더욱 촉진될 수 있다. 한국은 글로벌 물류와 기술의 허브가 되기 위해 러시아를 비롯한 수많은 기업과 인재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개방형 플랫폼이 만들어져야 한다.
즉 새로운 물류 장악력과 함께 기술력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제3의 상호 협력적인 개방형 플랫폼이 한러 양국에 마련되어야 한다. 다행히도 양국의 기업과 정부도 이를 원하고, 이를 위한 공조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2019년에 양국이 만든 한러혁신센터는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물류와 새로운 기술을 양국의 상호 협력적 개방형 플랫폼을 통해 확보한다면 상호 윈윈함과 동시에 한국은 유사 이래로 처음으로 세계 경제의 새로운 패권국으로 부상할 수 있다. 여기에 러시아가 제공하는 막강한 에너지원은 거절할 수 없는 덤이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됨에 따라 급증할 전력 수요를 충당할 수 있는 대규모 수력발전(연간 생산량은 2017년 기준 187TWh, 설비용량 100MW이상, 발전소 102개소 보유, 세계5위)와 천연가스라는 청정 발전원을 가스관과 선박을 통해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곳도 지척에 있는 러시아이다.
또한 미중 경쟁이 한국에 양자 선택의 문제로 치환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사이에 있는 중간국 간의 협력 또한 매우 중요하다. 러시아는 미국에도 중국에도 필요한 중간 강국이다. 트럼프 집권 전후에 키신저가 미국과 러시아 간의 관계 개선을 시도한 것은 바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러시아였기 때문이다.
중국에는 경제적으로, 미국에는 안보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한국도 중간국의 위상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 때 가장 적합한 파트너가 바로 러시아이다. 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이 북극항로와 4차 산업혁명이 주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한국이 100% 활용할 수 있는 관건임에 틀림없다.
한반도에 들이닥치고 있는 미중 갈등의 대격변에서 한국이 수동적인 희생양이 아니라 판도를 이끌고 가는 능동적 중개자, 나아가 새로운 판을 만들어가는 패권국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 한국과 러시아의 협력관계를 전면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킬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한국과 러시아가 외교, 물류, 에너지, 기술, 그리고 인적 교류 등 다양한 차원에서 훌륭한 동반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명확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