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박상진의 한류 이야기’를 15회까지 소개하면서 일본 엔카라는 장르가 만들어진 시점, 첫 번째 엔카인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가 발표되면서 고가 마사오가 한국의 전수린을 표절했다는 점, 한반도에서 고구려 음악, 백제 음악, 신라음악이 일본 열도에 전해지면서 일본 전통음악이 생성됐다는 점, 그리고 일본 전통음악이 근대 명치유신 때까지 일본의 속악으로 이어져 오다가 ‘엔카‘라는 장르가 만들어지기까지 ’미야꼬부시’인 ‘요나누끼’ 음계가 만들어졌다는 점과 요나누끼 음계는 일본만이 갖는 특별한 음계가 아니고, 장음계의 경우는 ‘도레미솔라’ 음계, 단음계의 경우는 ‘미도시라파’ 음계라는 것을 설명하였다.
전수린은 개성에서 소학교를 다니면서 바이올린의 기초를 닦았고, 송도고보를 다니면서 바이올린과 음악이론을 정식으로 공부하였다. 어릴 때는 동요도 작곡하는 천재성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 후 서울로 이사하여 홍난파를 만난 후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하면서 편곡과 작곡 작업을 하게 되는데, 1926년에 <고요한 장안>을 작곡하게 되면서 이애리수에 의해 막간극의 노래로 불려졌다는 점과 1932년에 일본에서는 <원정>이라는 곡명으로 바꿔서 발표하였다.
한편, 일본 엔카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고가 마사오는 아버지를 여의고 7세 때 어머니와 함께 인천으로 이사 와서 인천공립심상고등소학교에 다니다가 12세 때 서울로 와 선린상업학교를 17세에 졸업을 하게 된다. 형님 집에서 살면서 고가 마사오는 늘 형님 집에 놀러 와서 한국의 전통악기를 연주하며 노래 부르던 한국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지냈다는 점을 설명하였고, 그 후 1922년에 서울을 떠나 오사카에 살면서 1923년에 메이지(明治) 대학 경상학부에 진학하게 된다. 고가 마사오는 1931년에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를 발표하면서 전수린을 표절했다는 표절시비가 일어난다.
그런데, 전수린 작곡의 <고요한 장안>은 일본에서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 보다도 6개월 늦게 발표됐는데도, 일본 박문관(博文館)에서 출판하는 잡지 『신청년』에서 1931년도에 발표된 ‘고가 마사오’의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가 전수린의 <고요한 장안(원정)>을 표절했다고 하는 기사(이호섭 글 참조)가 실렸다. 일본 음악평론가 사이에서 표절시비가 일어났던 것이다.
그렇다면, 엔카의 태동기에 엔카의 아버지라고 불려지도록 한 결정적 작품인 고가 마사오 작곡의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酒は 淚か溜息か)>와 한국의 트로트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전수린 작곡의 첫 트로트 곡인 <고요한 장안>의 노래를 비교함으로써 소위 일본 엔카와 한국의 트로트는 서로 어떤 음악적 연관성이 있는지 악보 분석을 통해 그 표절시비에 대해서 탐색해 보고자 한다.
<고요한 장안>과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의 악보 비교
가사는 생략하고 노래 멜로디만 비교하였다. 위의 악보를 비교 분석한 설명은 다음 회에서 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