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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센(大山) 단풍에 온몸을 적시다
글 / 조주현, 사진 / 김일현
일상에서 벗어남이 주는 자유로움과 여유는 항상 즐겁고 넉넉하다. 비록 돌아옴을 전제로 한 떠남이지만,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맞이하는 설레임과 기대감 때문에 사람들은 주저없이 배낭을 둘러메고 등산화 끈을 질끈 동이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한 여행은 ‘어디로 가는가’ 도 중요하겠지만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떠남의 의미를 더해준다. 그러므로 피끓는 청년 시절 초급장교로서 희로애락을 나누었던 동기생들과 함께하는 <대한민국 ROTC 15기 산악회 100차 산행 기념> 일본 돗토리현 다이센(大山) 등반이기에, 무슨 부언 설명이 필요하며 어떤 수식이 필요할까 싶다.
35년 전, 육군 소위로 임관했던 3452명 ROTC 15기 동기생 중에서 산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들이 모여 결성한 ‘일오산악회’. 2004년 7월 청계산 첫 등반을 시작으로, 매월 둘째 주말이면 날씨와 상관없이 산행을 해온 지도 어언 햇수로 9년이 흘렀다.
회원들 대부분이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어 접근성이 용이한 산을 물색하지만, 지방에 사는 동기생들과의 합동 산행을 계획함으로써 제주도 한라산을 비롯하여 국내 웬만한 산에 발자욱을 남긴 터다. 해외 등정도 2009년 큐슈 운젠산, 2010년 도쿄 부근의 구모도리야마를 다녀온 바 있다.
D-day는 2012년 10월 25일. 일본 돗토리현 사카이미나토항으로 가는 DBS 크루즈훼리에 승선하기 위해 참가 희망자들이 동해항 국제여객터미널로 집결하였다. 간단한 출국 수속을 마치고 배에 올랐다. 오후 6시, 우리 일행을 태운 13,000톤급 <이스턴드림호>는 동해항을 서서히 빠져 나간다. 바다에서 바라보는 낯익은 우리 산하! 멀리 두타산과 청옥산이 석양을 등에 지고 소처럼 길게 누워있다. 몇 년 전 백두대간을 할 때 10월 중순 청옥산 근처에서 비박을 했었는데 얼마나 추위에 떨었던지 생각하면 지금도 뼈속이 시려온다.
바다 한복판에서 맞이한 일몰도 장관이다. 바다는 잔잔하고 고요했다. 마침 오늘은 <독도의 날>. 고종황제가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정한 대한제국칙령 제41호가 발효된 기념적인 날이다. 독도 영유권을 둘러싸고 양국간에 마찰을 빚고 있는 때라, 동해상에 떠있는 자체만으로도 남다른 감회를 느끼게 한다.
객실로 오니 몇몇 동기들이 둘러 앉아 100차 등정 기념 자축연을 벌이고 있다. 모두가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삼삼오오 몰려 앉기만 하면 영락없이 20대 청년 장교 시절로 돌아간다. 이 각박한 세상에 나이와 세월을 잊고 허물없이 지낼 수 있는 동기생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크낙한 축복이 아니던가.
늦은 밤 갑판으로 나왔다. 배는 하얀 파도와 물보라를 일으키며 배는 거침없이 칠흑같은 어둠 속을 내닫고 있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수평선상에 하늘과 바다는 한 몸을 이루고 있다. 그 어둠은 바다 속 심연으로 끌어 당길 듯한 기세로 우리가 타고 있는 육중한 배의 몸체마저도 휘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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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침 우리 일행을 태운 이스턴드림호는 사카이미나토항에 도착했다. 양손 지문을 인식기에 확인하는 불쾌한 과정을 빼면 입국 절차는 단순하고 신속했다. 다이센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요나고시를 경유하여 다이센시로 이어지는 국도에서 바라본 차창 밖 풍경은 한산했다.
일본 돗토리현 다이센오키국립공원(大山隱岐國立公園)에 위치한 다이센미센봉(大山彌 山峯 / 1709m)!! 다이센은 구조부터가 독특하다. 하나의 화구에서 분출된 화산쇄설물이 용암과 겹겹이 층을 이루며 원뿔 모양을 이룬 성층화산으로서, 그 위에 용암 원정구(円頂丘)가 얹혀 있는 특이한 형태다. 그래서 화구가 없다. 제주도 산방산에 화구가 없는 이유와 같다고 한다.
다이센은 1936년 일본에서 세 번째로 지정된 국립공원으로서 최고봉은 해발 1729m의 쓰루가미네봉이다. 정상 표지석은 1709m 다이센미센봉에 세워져 있는데 설악산 대청봉보다 1m가 더 높다.
주고쿠 지방의 최고봉인 다이센(大山)은 웅장하면서도 자태는 단아하다. 일본을 대표하는 후지산을 닮아서인지 일본인들의 이 산에 대한 애정은 참으로 지극하다고 한다. 실제로 최근 일본 NHK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인들이 좋아하고 찾고 싶은 산 중에서 다이센은 후지산, 야리가다케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다이센은 신성한 산이다. 주고쿠 평원에 우뚝 솟아 햇살에 반짝이며 만년설에 덮혀 있는 다이센의 위용은, 이 지역을 지키는 수호신과 같은 상징적인 존재의 의미를 지닌다고 들었다. 요나고시와 돗토리현 학생들의 소풍 장소이기도 하고, 교가마다 ‘다이센’이라는 단어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고 하니, 이들은 자랄 때부터 무의식적으로 ‘다이센’의 존재를 가슴에 새기며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다이센 신사의 기록에 따르면 이 산을 ‘오가미다케(大神岳)’ 또는 ‘히로가미다케(火神岳)’ 라고 불렀다는데, 큰 신이 머물고 있는 산이자 불의 신이 살고 있는 산으로 숭배했다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의 이 산에 대한 섬김이 각별하고 생활 깊숙이 자리잡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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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센정보관 앞 주차장에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가 도착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거리에 다이센 정상이 우리 일행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날씨는 맑은데 정상 부근엔 옅은 안개가 끼어 시야가 흐리다.
오늘의 등반 경로는 나쓰야마 등산로 입구를 출발하여 아미타당 곁을 지나 5합목, 교자다니 분기점, 6합목의 로쿠고메 산장, 8합목의 주목군락지, 다이센 미야마 정상에 올랐다가, 하산 길에 교자다니 분기점에서 오른쪽으로 접어들어 다이센 북벽 아래 임도로 내려오면서 오카미야마 신사, 다이센지(大山寺)를 거쳐 다이센자연역사관 앞으로 원점 회귀하는 코스로 잡았다.
단체 기념 사진을 찍고 약 10분 정도 걸어 여름산등산로 입구에 도착했다.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이 지점의 표고가 780m이고 다이센 정상까지 1709.4m이니 남은 비고(比高)가 약920m이다. 정상까지의 산행거리는 대략 7.5km. 한마디로 가파른 비알길을 각오해야 한다. 설악산 대청봉을 최단거리로 오르기 위해 오색약수에서 출발했다고 보면 비유가 적절할 듯하다.
여름산 등산 입구에서 1합목(合目)을 지나자마자 오른쪽 숲속 사이길에 아미타당(阿彌陀堂)이 서있다. 아미타불을 모신 당(堂)이다. 대산사(大山寺)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서 일본 중요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는데 별도로 입장료를 받고 있다. 시간이 없어 입구에서 사진 몇 장을 찍고 이내 걸음을 옮긴다. 울창한 삼나무 숲이 인상적이다. 숲 사이 음습한 곳에 묘석들이 어정쩡하게 서있는데 외관과 분위기가 기괴하다. 게다가 크고 작은 불상마다 붉은 털실로 모자나 옷을 만들어 입혀 놓았는데 대리석과 묘한 대비가 오히려 음산한 기운을 더해 준다. 풍습이 다르고 종교의 섬김 방식이 민족마다 다르니 이들의 불심을 표현하는 방식의 속내를 알길 없으니 이방인의 눈엔 그저 생경할 뿐이다.
아미타당을 지나자마자 바로 비알길이다. 미처 워밍업할 겨를도 없이 눈앞을 가로막는 급경사길인데다가 사람의 보폭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끝없는 나무 계단에 체력 소모가 크다. 모처럼의 해외 산행에 들뜬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재잘거리던 동기들의 대화도 점점 잦아들더니 가뿐 숨소리만 들린다. 초반에 무리하면 낭패 보기 쉬운 코스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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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합목 일대는 수령이 100년 가까운 너도밤나무 군락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울릉도에서나 볼 수 있다는 희귀종이지만 이곳에서는 지천에 흔한 수종이다. 상수리나무나 떡갈나무와 유사하며 작은 세모꼴의 도토리가 달린다는데 아무리 올려다보아도 열매가 눈에 띄지 않는다. 나무가 너무 높은 탓인가 아니면 열매가 너무 작은 탓인가? 저래도 수령이 보통 350년이나 된다고 한다.
고도를 높여 갈수록 비알길은 끝이 없다. 하산 중인 일본 등산객들과 연신 마주친다. 대부분 노인들이다. 연신 ‘곤니찌와!’ 인사를 건네 온다. 일본말로 화답하다가 ‘안녕하세요!’로 바꾸었다. 입에 익지 않은 일본말이기도 하지만 인사로서의 진심이 담기지 않는 것 같아서 였다.
교토에서 딸과 사위와 함께 왔다는 할머니. 젊은 사람도 힘에 부치는 비알길에서 연신 땀을 훔치며 쉬다가다를 반복한다. 곁을 지나치며 ‘간바레 오바상!’ 했더니 ‘화이토!!’하며 해맑게 웃으신다. 산이 안겨주는 친화력 때문일까. 산에서는 모두 다정한 이웃이 된다.
1245m 5합목에 위치한 교자다니 분기점. 정상으로 향한 오름길과 북벽을 바라보며 오가미야마 신사를 통해 원점으로 회귀하는 하산길이 여기에서 갈라진다. 가뿐 쉼을 내려 놓을 틈도 없이 6합목에 위치한 로쿠고메 산장을 향해 다시 거친 비알길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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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분 언덕길을 헉헉거리며 오르니 로쿠고메 대피산장에 당도했다. 산장치고는 규모가 영 기대 밖이다. 기왕에 만들려면 좀 크게나 지을 일이지 이게 뭔가 싶어 안을 들여다보니 내부는 더 비좁다. 축소지향형의 일본인들 성향 때문일거라고 김일현 회장과 이야기를 나누며 웃었다. 조난자 구조시 사용하는 눈썰매 비슷한 것이 먼지를 푹 쓴채 구석에 기대어있다. 대피소 아래 마당엔 나무 평상이 펼쳐있고 커다란 너럭바위가 놓여 있을 정도로 공간에 여유가 있다. 배가 고프다. 일부는 정상에 가서 점심을 먹겠다며 자리를 떴다. 금강산도 식후경 아니냐 하며 출발 지점에서 받아온 도시락을 펼쳤다. 먹을만 하다. 시장이 반찬인데, 이 상황에서 무언들 맛이 없으랴.
대피소 앞에 전망도가 세워져 있었다. 이곳의 전망이 뛰어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저만치 아래 사카이미나토 항이 보인다. 그 앞이 동해다. 오른쪽 빗사면을 올려다보니 해마다 산 아래로 수 천 톤의 토사와 돌을 흘려 내리는 북벽과 다이센의 최고봉 쓰루가미네봉(1729m)이 서있다.
산장에서의 최고 볼거리는 바로 건너편 신미네봉(1636m)에서 이어진 가미호슈고에 능선과 시모호슈고에 능선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단풍이 단연 압권이다. 다이센의 단풍은 일본에서도 최고가 아니던가.
온 산이 불타오른다. 수놓은 비단결처럼 화려하다. ‘霜葉紅於二月花’당나라 시인 두목이 ‘서리 맞은 단풍잎이 봄꽃보다 아름답다’고 했는데,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형상을 바로 그랬다. 스킬자수처럼 푹신해 보이는 산 건너 단풍 위로 훌쩍 뛰어내리고 싶어진다.
노랫말처럼 정말 초록이 짙어 단풍이 드는 걸까? 산 전체가 불타오르는 화원 같고 봉우리 하나하나가 활짝 핀 꽃송이 같다는 어느 소설가의 표현도 약해 보인다. 정말로 한 여름 내내 산은 어디에 이 수많은 색을 감추어 두었다가 이 가을 한꺼번에 뿜어내는 것일까. 초록의 스팩트럼이 단풍 빛깔로 바뀌는 기묘한 자연현상 앞에서 우리 인간의 재주는 얼마나 보잘 것이 없고 미약한 지를 깨닫게 된다.
아쉽지만 피난산장에서 일어나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길은 여전히 급경사에 통나무 계단길의 연속이다. 정리정돈하면 유난히 깔끔을 떠는 일본인들인데 여기 관리 상태는 영 말이 아니다. 안내 지도엔 30분 정도 오르면 8합목이라 했다. 숨을 고르며 한발 한발 나아간다.
멋지게 차려입고 하산 중인 젊은 여성 둘과 마주쳤다. 이들이 요즘 일본의 산에서 패션 감각을 뽐내며 산행을 한다는 야마걸(山-girl)인가 생각했다. 미소를 지으며 ‘곤니찌와’ 인사를 건네온다. 다이센을 오르며 인사를 주고받은 등산객들 거의가 장년이거나 노인들이었기에 홀연 기분도 새롭다.
해발 1600m를 지난 7합목 지점에서 ‘카라보추’라고 하는 다이센 주목 군락을 만난다. 주목의 변종으로서 돗토리현을 상징하는 나무이며, 다이센은 일본의 최대군락지로서 특별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억센 나뭇가지와 짙푸른 잎새에서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왜소함과 과도한 몸낮춤을 바라보며,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 간다는 우리나라의 주목과는 비교할 바가 못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나무 계단길도 끝났다. 이미 시야는 넓고 멀리 트여 정상까지 단숨에 내다보인다. 8합목에 당도했다. 정상으로 가는 두 갈래 길 중에서 왼쪽을 택했다. 어느새 주목군락 지역에서 벗어났다. 평원같은 초목류 사이로 널빤지를 깔아 놓은 등산로가 정상까지 이어진다. 정상으로 향하는 목재 데크길은 평평했지만, 길의 양쪽 경사면은 칼날을 세운 듯 아찔한 낭떠러지여서 위태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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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다이센의 정상인 미센봉(彌山.1709m)에 올랐다. 다이센의 최고봉 쓰루가미네봉(劍ケ峰, 1729m)이 손 닿을 듯 서있는데 출입은 금지되어 있다. 칼날같은 양쪽 급사면이 위험하여 여름에는 통제하고 겨울에는 갈 수 있다는 아리송한 설명을 들으면서 그저 눈도장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다이센(大山)은 ‘큰 산’이라는 뜻이다. 고유명사 치고는 좀 싱겁다는 생각이 들지만, 중국의 태산(泰山)처럼 그냥 높고 큰 산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족하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매우 높은 산도 아니다. 일본이 자랑하는 후지산((3776m)에 비하면 다이센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외형상의 단순한 높이보다는 이 산이 지니고 있는 상징적이고 정신적인 ‘크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중국의 태산도 고작 1535m에 불과하듯이----. 산의 신령스러움은 높이와 관계없는 외경심의 발로 아니던가.
정상석에는‘大山頂上 1710.6m’라는 동판이 박혀있다. 다이센은 넓은 평원에 홀연히 솟아 있는 형상이라 사방이 막힘없다. 이 지역에서는 단연 독보적인 존재감을 빛내며 높이 솟아 있다. 하지만 산과 산이 첩첩하고 능선과 능선이 어우러진 우리의 산하에 비해, 다이센의 고고한 자태는 오히려 차갑고, 당당한 위엄에서 고독이 묻어난다고 하면 실례되는 표현일지.
김기영 총무가 하산 10분전을 알린다. 하산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 이번 등반에 참가한 ROTC 15기 합창단 맴버들에게 ‘어느 시월의 멋진 날에’를 즉석에서 청해 듣기로 했다. 이들 합창단은 정기 연주는 물론 작년에 KBS 2TV ‘남자의 자격’ 청춘합창단과 서울 예선에도 함께 출전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눈을 뜨기 힘든 가을 보다 높은 / 저 하늘이 기분 좋아 ~ /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 모두가 너라는걸 /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다이센 정상에 울려 퍼지는 동기생들의 멋진 합창소리. 이보다 더한 감동과 추억이 있으랴, 뜨거운 가슴에서 울려나와 천상을 가르는 하모니처럼 우리의 우정과 동기애도 영원하기를 기원하였다. 뜻밖의 멋진 앙상블에 다른 등산객들도 환호성과 박수를 보내온다. 노랫말처럼 오늘은 정말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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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은 정상 대피소에서 좌측 널빤지 테크길을 따라 내려오는 코스로 잡았다. 이 방향도 결국 8합목에서 다시 합쳐져 교자다니 분기점으로 향하게 된다. 올라 올 때 못 본 오른쪽 경사면의 풍광을 보기 위함이기도 하다.
다이센 남동벽도 토사 더미가 흘러내려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누군가 눈 덮힌 겨울에 비료 포대에 올라앉아 썰매를 타면 좋겠다는데, 내가 보기엔 한번 내려가면 다시는 올라오기 어려운 아득한 나락같다.
산 아래로 드넓은 마스미즈 평원이 평화롭다. 다이센과 하루젠을 오가는 잘 정비된 국도엔 차량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다. 어디나 삶의 현장은 저리도 바쁘고 치열하다.
왼편 아찔한 낭떠러지를 끼고 내려오는 길 옆에 바위굴 하나가 나타났다. 안에 촛불도 켜져 있고 작은 제단도 설치 된 것으로 보아 단순한 토굴은 아닌 듯 싶다. 8합목에 가까운 지점에 왔을 때, 문득 작은 늪지가 눈에 띈다. 이 높은 고도에 위치한 습지라서 찬찬히 둘러보고 싶은 호기심도 발동했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아 발걸음을 옮겼다. 8합목에서 널빤지 깔린 길은 다시 합쳐지고, 평원 끝에 다다르자마자 로쿠고메 피난산장으로 급경사를 이루며 내려간다.
교자다니 분기점에서 오카미야마 신사 방향으로 접어 들었다. 오전에 아미타당에서 올라오던 급경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얼마나 가파른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헛디디거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 십상이다. 하산 길이라 하체에 힘도 부족한데 한 걸음 한 걸음 집중해서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머리가 어질어질할 지경이다. 온통 시선을 급경사 내리막길에 빼앗긴 상태라 경치 구경은 안전에도 없다.
잠시 멈추어 섰다. 다이센 북벽이 바로 지척에 서 있다. 식물 분포군이 고도에 따라 식생대가 분명한 산이어서 어느새 주변 경관도 많이 달라졌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는 혜민 스님의 말이 떠올랐다. 산행을 하다 보면 멈출 곳에서 멈추어야 한다. 또한 멈추지 말아야 할 곳에서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이 말이 어찌 산에만 적용되랴,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다이센은 식생은 기후나 지형의 영향을 크게 받아서, 특유의 식물과 고산대ᆞ아고산대 식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다양한 소형 동물과 조류, 곤충류 등이 서식하고 있어서, 국가 지정 ‘다이센산 조수(鳥獸)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 여기까지 오는 동안 새 울음소리 듣지 못했고, 산마다 그 흔하게 서식하는 다람쥐 한 마리 못 본 것 같다. 조수 보호구역이 라는 명칭이 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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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에 내려섰다. 다이센 북벽에서 쏟아져 내리는 토사들이 긴 협곡을 이루고 있고, 토사유출을 막기 위한 시방댐 축조에 동원된 중장비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대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 미약한 인간이 맞선 형국이다. 마치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을 방불케하는 대단위 토목 공사판이었다.
허물어져 흘러 내리는 산!! 다이센은 생성 자체가 그런 운명을 안고 태어난 비련의 산이다. 성층화산으로서 화산체의 성장과 함께 붕괴와 침식이 일어나면서 생긴 쇄설물들이 토석류(土石流)나 이류(泥流)가 되어 산기슭 아래로 쏟아져 내리는 지질 구조 때문이다.
누가 북벽의 모습을 올려다보며 장관이라 하는가. 내 눈에는 매년 수천톤의 토사와 돌이 붕괴되어 흘러내리는 다이센의 참담한 몰골이 그저 안타까을 뿐이다. 하지만 북벽을 에워싼 가을 단풍은 정말 곱다. 그래서 회색으로 무너져 내리는 북벽의 모습과 이제 막 넘어가는 저녁 햇살에 반사되어 고운 빛깔과 자태를 뽐내는 단풍의 대비는 차라리 비장감이 감돈다. 넘어가는 햇살에 빛추는 석양이 장엄한 소멸의 이미지로 다가오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임도를 벗어나 삼나무가 하늘을 가릴 정도로 무성한 숲길로 접어 들었다. 어떤 삼나무는 어른 몇이 팔 벌리고 둘러서야 할 정도로 밑둥이 우람하다. 건장한 일본 스모 선수 같다.
떨어진 단풍이 낙엽이 되어 길가에 수북하다.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에 채이는 대로 아무 말이 없다. 그도 한 때는 푸르른 신록이요, 화사한 단풍의 일부 였건만. 나무 등걸에 걸터앉아 몇 자 긁적거려 본다.
소멸의 무게조차 이기지 못하여
빙 돌아 날아 내리는
낙엽 발길에 채이면서도
봄에 돋아날 새싹을 위해
침묵하며 바닥에 엎드린
그의 모습이 비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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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토다니 삼거리에서 15분 정도 숲길을 내려와 오카미야마 신사에 도착했다. 원래는 다이센 산신을 모셨는데 메이지시대 이후에는 대지의신 오나무치노미코토를 모신다고 한다. 신사는 제법 규모가 컸다. 지붕 모양이 다른 부속 건물이 양쪽에서 신사를 옹위하고 있다. 신사 본전은 노송나무로 만든 지붕과 양쪽 긴 회랑이 안정되게 자리잡았다. 그런데 아무런 단청이나 채색도 하지 않아 퇴락한 건물같은 인상을 준다. 나무로 된 마루도 오래되고 낡아서 부서져 내릴 지경이다.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고 하는데 화장도 하지 않은 여인의 민낯처럼 방치해 둔 연유가 궁금했다.
그래도 내부는 좀 나아보인다. 본전 입구에 미끈한 말조각 어신마(御神馬)가 방문객을 맞아 준다. 머리를 쓰다듬으면 치매를 예방하는 효렴을 지녔다고 한다. 뭄통에 두른 띠에는 돗토리현이 선명하다. 내부를 휘휘 둘러보고 나서 돌계단을 통해 입구로 양 옆으로 매끈한 비석과 삼나무가 다소곳이 도열해 있다.
생명을 연장해 준다는 어신수(御神水)에서 한 바가지 물로 목을 축인다. 신사에서 다이센지로 이어지는 돌길이 참 특이하다 싶었는데, 이 길이 일본에서 가장 긴 자연석 길이란다. 길 옆 커다란 바위에 부조로 새겨놓은 마애석불이 정겹다. 이곳에도 길 양쪽으로 붉은 옷을 입혀 놓은 불상들이 즐비하다. 아무리 보아도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다.
삼나무 뿌리와 큰 바위가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지점을 지나 돌아 나오는 왼쪽에 다이센지(大山寺)가 있었다. 718년에 세워졌고, 지장보살을 모신 불도량으로서, 한때 승방 160개에 3000명의 불자가 머물 정도로 융성했다고 한다.
다이센 자연역사관으로 통하는 길은 미끈하게 잘 정비되어 있었다. 피곤한 등산객들을 위해 족욕하는 곳도 있고 오래된 여관과 기념품 가게들이 나란히 있는데 주말인데도 한산하다. 오른쪽 산등성이에 스키장 리프트가 보인다. 유명한 나카노하라 스키장이다. 이 지역은 적설량이 많아 일본에서도 최적의 스키장으로 손꼽힌다고 한다.
주차장에 모였다. 다이센 정상을 올려 본다. 넘어가는 저녁 햇살에 산봉우리는 선명히 빛났고, 온산은 붉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하루 종일 붉은 단풍 속을 노닐다 온 셈이다. 옷을 벗어 짜면 주루룩 붉은 단풍색이 나올 법하다. 마지막으로 다이센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 촬영을 마치고 숙소로 향했다.
사방은 어느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뿌듯한 성취감만큼 피곤함도 몰려 든다. 여행이란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일손을 놓고 멈추어 서서 자신을 돌아 보는 것이라 했던가? 그것은 마침표 찍듯 단호하게 끝매듭 짓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쉼표 하나 살짝 찍어 놓고 숨고르기 하는 여유이다. 아울러 그 쉼표 다음에 이어갈 새 단어와 문장을 찾기 위한 모색이기도 하다. 아는 만큼 보이기도 하겠지만, 보는 만큼 느낌의 양도 커진다는 것을 깨우친 산행이어서 행복했다.
동기생과 함께한 <대한민국 ROTC 15기 산악회 100차 산행 기념> 일본 돗토리현 다이센(大山) 등반도 그런 소중한 쉼표이며 감동이었기에 아쉬운 마무리를 지으면서 다음 산행을 기약하고자 한다. ***
산행기가 잡지로 편집된 이미지 이므로 보기에 불편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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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내일 책방에 가서 사려고 했는데, 이렇게 올라오면 살 이유(^_^)가 없어지잖아? 감사해요!
서교수 한권정도 사서 보관해놓고 연구실에... 조박사 서명 받아서
조장학관 서명은 빼더라도, 총장님 서명받으려면 2권사둘게! 한권은 보관했다가 정진앙 동기 귀국하면 줄생각이야!
귀국하면 곧바로 연락 할껴~잉~!!! 이왕이면, 김일현사무총장, 조주현동경사령관 싸인
받아 뇌야지!
수능시험으로 바쁜 와중에도 산행도 함게 하고, 글도 남겨 준 조주현동기에게 감사합니다.
다이센 정상에서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부르던 모습!!
멋진 사진과 멋진산행기에 탄복합니다.
이글을 다른 곳에 자랑하고 싶은데...옮기면 저작권문제는 어찌 됩니까? 글쓴이..사진기자..특히 잡지사...
"서리 맞은 단풍이 봄꽃 보다 아름답다~"
제목도 너무~ 근사하고..
웹진으로 본 사진도 너무 너무 활홀하네요~
멋진 글과 사진 올려주신 두 분께 감사~
단풍의 아름다움과 다이센의 허물어져 내리는 모습의 대비를 비장하게 그리고 싶었는데-----. 필력이 약했어요. ㅠㅠㅠㅠ
어떡해야 저렇케 글을 잘 쓸수 있지
술 마시는 매너도 좋고
좋은 글에 날개를 달아준 일현이도 수고 많았다
그런데 해워니는 아직 출근 도장을 안찍었지
주현이 글실력, 술매너, 등등은 내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만 이렇게 대외적으로 일오산악회를 멋지게 홍보하게된걸 동기생 한사람으로 자랑스럽게 여기네 ~~~~
우보 현중제 글을 읽노라면 국어 전공을 해야만 글 잘쓰는게 아니고 타고나야 되는것 같더라만 조주현 장학관은 둘다 가지고 있으니 장래가 촉망되는 꿈나무 ㅋㅋㅋㅋ
저노마 비리만 캐내면 단칼에 베어 버리고
주민등록만 울산으로 이전 하면 된다니까~~ㅋㅋㅋㅋㅋㅋㅋ
나도 1971년도 부터 우리 작은형이 동해화력에 근무해서 자주 울산에 갔었다니까
방어진인가
공병학교 재학중에는 온산 공단을 현대에서 공사할때 직접가서 현장지도도 해주엇고
우리형 따라서 월례인가 물이 따뜻한 해수욕장도 가봤고
종렬이네 주요소 있는 일산 해수욕장에는 수도없이 가봤고
해워니 가슴이 뜨끔하제~~ㅎㅎㅎㅎㅎㅎ
일루 전출와라 큼직한상 맹걸어 주꾸마 ㅋㅋㅋㅋㅋ
받꼬 싶거들랑 군사령관한테 때써바라 ㅋㅋㅋㅋ
월간 사람과산 12월호 2권을 사서 조주현, 김일현 두친구의 저자싸인 받을 준비를 했습니다. 마침 우연찮게 토요일 친구딸 결혼식에서 조주현 장학관은 만났고...! 김일현 총장만 만나면 되는데...!
값도 싼데, 무척 두껍네요! 한권은 내가 소장! 한권은 정진앙 동기 귀국하면 전달하겠습니다.
조장학관 싸인펜(^_^) 가지고 다녀!
정진앙동기는 내년 3월 귀국한후에 사고 싶어도 못살수도 있을테니, 미리 확보한거고...! 군단장은 옆에 있는 책방에 한번 들리면 되잖아?
지낭이 귀국하면 군단장께 싱고하러 올끼다 그때 가치 오너라 !!
같이 산행한 동기로서 이렇게 세밀하고 감성적인 글이 되리라곤 상상을 못했습니다.
멋진 글에 다시한번 찬사를 보냅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선상 노래자랑에서 마지막 초청 스테이지에 사오합창단이 특별 출연하여, 다이센 정상에서 불렀던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열창했던 기억도 멋진 추억이었네.
좋은 사진과 글 아주 즐감했습니다...감사합니다...
이런 어마어마한 사구가 돗토리현에 있었다네----. 인터넷 검색하면 설명나와요.
암튼 조 장학관은 저 장문의 산행기를 어떻게 썼을까? 찬사와 경의를.......
산행을 계획하고 실행한 산악회 집행부와 일본 여행에 모든수고를 아끼지지않은 나노 여행사 기범 동기에게 고마움을다시한번 표합니다. 또한 같이한 모든동기 및 가족들께도 같이해서 즐거웠다고 전합니다. 또한 한친구의 빠른 쾌유를 빕니다.
훌륭한 산행기와 그림, 사진 정말 멋지고 대단합니다. 감상도 잘하고 사진도 멋쟁이 잘 구경했습니다. 모두 정상에 우뚝 솟은 봉우리 십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감사합니다
다이센보다 더 아름답고 열정적인 여인과의 춤이 있었음!!! 오해마시기를----. 나는 저렇게 멍하니 앉아있다가 졸지에 끌려나갔으니까!!! 최00 마나님 진짜 멋쟁이!!! 춤쟁이!!! ㅎㅎㅎㅎㅎㅎ
(돌아오는 배에 모두가 모여 앉아 사랑, 우정, 건강을 위해 건배를 높이 들었습니다)
이번 여행을 기획하고 준비해준 동기생들에게 감사!!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그대들이 동기여서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 15기를 위하여 건배!!!!!!!
만세! 만세!! 만만세!!!
장난이 아니네
선생님의 동작에 마추어 '강남스타일!!' 얼쑤 얼쑤!!! ㅎㅎㅎㅎ
뒤에 사진들이 죽인다 정말 멋있는 선상의 밤이었습니다
사람과 산에서 내 글 봤다고 여기저기에서 축하 전화 받고 있네. 자네 덕일세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