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던 사창리 생지 비행장......
김수원
군대야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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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2012.11.21 18:31
(아랫 글은 조종동기회 홈에 올린 글인데......사창리 27사단 항공대 조종사로 근무 할 당시 있었던 일을 기억해서 썼슴. 참고로 본인은 27사단 항공대에서 2년, 원주 횡성 비행장 77비행대에서 2년을 근무했었슴. 27사단은 사창리에 있었지만 항공대는 춘천 샘밭 비행장에 있었슴.
총 비행시간은 1979시간으로 5년 동안 나만큼 비행기를 많이 탄 조종사는 없었슴. 사단 항공대의 임무는 훈련지원비행,전령비행,DMZ감시비행,인원공수비행,전투지원비행,소량의 화물 운송,연락비행, 비행훈련 등이고 77비행대에서의 임무는 주로 정비 후 출고 전 시험비행임. 본인의 비행시간이 많은 것은 주로 시험비행을 많이 했기 때문임. 참고로 공군의 20년 이상 근무한 중령 대령급 고참 조종사들의 비행시간이 보통 2000시간 안팍인 것을 보면......물론 그사람들은 계속 비행기를 탄 것이 아니고 여러 보직으로 옮겨 다니는 경우가 많음..... 본인이 5년 동안 기록한 비행시간이 얼마나 많은 것인가를 알 것임. 동기들이 재미있게 읽어 준다면 조종사 시절의 이야기를 후속담으로 올리겠슴))
1978년 12월 어느 날 부대 인사계 도유복 상사가 사단 사령부에서 봉급을
수령하기 위해 사창리에 들어갔는데 그날 오전에 눈이 많이 내려서 오후부터 춘천 나오는 차편이 끊어졌다.
누구나 봉급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그날 타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각자 또는 각 가정에서는 날짜에 따라 사용계획이 있기 때문에 제 날짜에 수령하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춘천에는 눈이 그렇게 많이 오지 않았다.
바닥에는 눈이 조금씩 쌓였으나 그저 지나가는 눈빨이 듬성 듬성 보일 정도였다.
사창리 기상을 확인해 보니 늦은 오후에는 눈빨이 조금 약해졌다는 연락이 왔다.
항공대장의 임무지시로 FLY PLAN을 내고 비행기에 쌓인 눈을 털어내었다.
78년 12월 무렵에는 비행조종시간도 400시간이 갓 넘어섰고
조종감이 손에 한창 물 오를 때이니까 조종 기량으로 따진다면
부대내의 어느 고참 조종사 못지 않은 상태였고 그러다 보니
고참들이 싫어하는 귀찮은 임무,바람이 많이 불거나 날씨가 엉망일 때는 등 떠밀려서 곧잘 임무를 떳다.
특히 춘천 샘밭 비행장은 측풍이 잘 부는 곳이라서 크리빙에는 어느정도 숙달이 되어 있어 어떤 비행장에 가더라도 이착륙에는 어느정도 자신이 있었다.
조종동기분들 다 아시다시피 사창리 비행장은 가장 악조건을 가지고 있는 주위가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전방에 있는 비주둔 생지 비행장이어서 이착륙이 무척 어려운 것으로 군 조종사들 사이에 알려져 있다.
27사단 항공대가 아닌 다른 부대에서 사창리로 임무를 오는 조종사들은 기량이 좋은 고참 조종사들인데도 이착륙에 쩔쩔 맬 정도로 어려운 곳이다.
비행 전 점검을 끝내고 샘밭 비행장을 하얀 눈보라를 뒤로 일으키며 활주로를
이륙하였고 춘천 상공에서 기상상태를 점검해 보니 그런데로 비행이 가능 할 것으로 보여 기수를 북으로 향하고
춘천 댐 상공을 지나 신포리 초소 상공을 통과할 때까지 눈은 내리고 있었으나 비행하는데 지장은 없었다.
그러나 잠시후 사창리 상공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는 하늘이 시커멓게 변하였고 눈이 엄청나게 내리고 있었다.
시계는 겨우 도로를 분간을 할 수 있을 정도였으나 3마일 이상은 되는 듯 하였다.
하지만 아래쪽 지형지물을 잘 분간할 수 없어 그냥 춘천으로 되돌아갈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임무를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간다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보잘것 없는 임무일지라도 군인의 본분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였고
어렴풋이 눈발 사이로 보이는 사창리 R-317 비행장을 내려다보며 착륙절차에 따라서 비행장으로 접근을 하였다.
고도를 장주 높이로 맞추고 FLAP을 내리고 터닝 배이스 중에 잠시 눈 구름속을
스쳤는데도 비행기가 요동을 쳤다. 구름속에는 항상 난기류가 있기 때문이다.
순간 약간 당황을 하였으나 곧바로 구름을 지나치고
FINAL LEG에 진입하여 착륙을 위한 APPROACH을 하는데 속도가 떨어지니 전방창에 눈이 들어붙어 앞을 볼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어프로치하면서 비행기를 지그자그로 움직여 측면창으로
활주로를 볼 수밖에 별 뾰쪽한 방법이 없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비행기는 술취한 사람처럼 갈지자로 출렁거렸고
비행기는 활주로 FINAL LEG(착륙 접근로)를 벗어나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더욱 불리한 것은 비행장과 주변이 온통 하얗게 눈으로 덮여있어 어느 것이 활주로이고
어느 것이 도로와 논바닥인지 구분이 어려웠다.
다만 사창리 동네 뒷산 교회의 종탑과 비행장 콘세트 막사를 기준으로 어림잡아 활주로에 정대할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착륙은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비행장 상태는 확인해야 하겠기에
낮은 고도로 접근해서 활주로 상태를 살피니 공병대 장비가 동원되어 제설작업이
어느정도 되어있어 착륙은 가능할 것 같았다.
복행하면서 아래를 보니 이미 도 상사가 비행장에 와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다시 장주를 한바퀴 선회하면서 비행기 속도가 올라가니 전방주시가 어느정도 가능할 만큼
전방창에 붙었던 눈이 강한 맞바람에 조금은 걷혀나갔다.
Down wind leg에서 속도를 줄이고 후랩을 쓰니 전방창에 또 눈이 붙기 시작했고
Base leg를 돌아 Final leg에 이르니 조금전과 같은 상황이 되풀이 되었다.
활주로가 보이지 않으니 갈지자로 활주로에 접근하였고
착륙 높이를 감 잡을 수 없으니 마지막 조종간 댕김 높이가 엄청 높았다.
믿는 것은 생지 비행장이니 바운딩되어도 그렇게 많이 튀어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스로틀 레바를 컷트하고 조종간을 뒤로 잡아당겼다.
조금있으니 비행기는 풀썩 활주로위에 내려 앉았고 착륙 느낌은 솜 위에 내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비행기는 얼마 굴러가지 않고 곧바로 활주를 멈추었다.
마지막 조종간 댕김을 높게 잡은 것이 눈으로 인해 활주로를 잘 구분할 수 없었던 상황에선 오히려 다행이었다.
이왕에 어렵게 착륙하였으니 활주로 눈 청소나 하고 가자는 생각으로
비행기를 이리저리 몰고 다니며 프로팰러 후풍으로 활주로 위에 쌓인 눈을 불어내었다.
비행장 옆 도로를 지나던 차량들이 무슨 큰 구경거리라도 되는 듯
차를 멈추고 구경을 하였고 차가 있는 도로를 향해 프로펠러 회전수를 올리며 눈들을 그 차량들에 덮어씌웠다.
활주로 눈을 어느정도 불어낸 뒤 도 상사를 태우고 사창리 비행장을 이륙할 쯤에는
오던 눈도 거의 그쳐가는 중이었고 이륙후 사창리 상공을 벗어나자 도 상사가 내등을 툭 쳤다.
뒤를 보니 엄지 손가락을 치켜새우며 씨-익 웃고 있었다.
지금도 눈이 올 때면 샘밭 비행장에서 눈치우던 광경과 함께 떠오르는 추억 속의 한 장면이다.
이상.
당시 본인은 등에 식은 땀을 흘리며 긴장을 하면서도 임무 완수라는 사명감에 좋은 결과를 얻었구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올려 주시고, 홈피에 자주 출입하시려! 15기 홈피는 전천후 활주로에 항시 이착륙에
아무런 장애가 없고, 24시간 언제나 이.착륙이 가능 함을 알려 드립니다! 건강하시구려! 지는 특전사 근무해서
비행기 타고 이륙은 많이 했고, 비행기타고 착륙은 한번 못 했시유~! 그저 승질이 거시기 해서 중간에
낙하산 타고 뛰어 내렸시유~!!!
앞으로 수원이 글을 읽으려면 괄호안에 용어 해설을 해주어야 이해하기가 쉽겠다
군복무 시절 지상에서 3m 이상(덤프트럭 적재함)을 올라가보지 못했으니 공중 용어를
알겠어
비행기에 트랩을 밟고 올라 탔으면 비행기에서 트랩을 밟고 내려와야지
성질이 급해서 맨몸으로 내리는 승객이 있다는것도 처음 알았고
그러니까 자주 서로 이바구를 해야한다니까
지낭아 밀워키서 돌아올때 인천 앞바다에 제발 뛰어내리지 말라우
나 지금 바빠서 문상 못가 ~~ㅋ
아마 특전사 출신 우리 동기들이 거의 100% 트랩타고 탑승한 후, 트랩 밟고 내린 동기들이
한명도 없을 꺼~얼~!! 그래서 지금도 비행기 탈 때 마다 그 생각이 나더라구~,
그런데 George Brown 귀하께서는 언제 귀국 예정이신가?
Mr.를 꼭 붙여라 Sir.까지는 필요없지만~ㅋㅋㅋㅋ
Yes sir, I noted well, Mr. George Brown !!!(거시기 건~빵~!!!!!)
이야 ~~~~ 김수원 !!
가찹게 있어도 어떠케 생겼는지도 모르고 지내고 있따만 조만간 신고받을 준비는 단단히 하고 있응께 12월 15일에는 신고토록 하거라이 ~~~~
사단 빙기는 L19 정찰기 비행기를 말하능기제 ????
이제 울산군단도 갖출건 다 갖췄네 항공장교 군단장 전속 파이롯뜨도 부임했응께 ㅋㅋㅋㅋ
특수병과 특수보직으로 근무하면서 있었던 재미난 사연들을 틈나는데로 계속 올리거라 사진도 첨부해주면 더더욱 좋을텐디 ~~~~~~ 기대함세 !!
생지 비행장은 활주로가 아스팔트나 시멘트 포장이 안된 흙으로 다져진 비행장이라는 의미인가? 아니면 지명?
fly plan은 비행계획서? Flap은 뭔지는 모르겠지만, 착륙할때 필요한 장비?
Down wind leg도 모르겠지만 날개접는 위치? 쯤 되겠네?
김수원 동기! 좋은글 감사!
읽어 주어 고맙소. 생지는 말그대로 비포장 활주로를 말하는 것이고 FLAP은 날개에 붙어 있는 보조날개로서 에어 브레이크 역활과 이착륙 또는 저속비행 시 비행기의 양력을 증가시키는 것이 주용도입니다. 항공기에서는 날개 다음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가는 그저 이름이 생지 인가보다, 하면서넘어 갔는데, 그러니 나가 학교 다닐때 성적이 참 거시기 헀지, ㅉㅉㅉ, 대표 모델 사진을 바꾸고 나니, 훨~ 보기 좋습니다.
生 地
이거지 오카야~~ㅋ
군대야그를 오랫만에 보고들으니, 감회가 새롭네그려,,,좋은 글 감사합나이다...
어려운 임무수행과 대단한 비행기록은 김수원(공항)을 김인천(공항)으로 격상시켜서 다시 봐야 할 것 같으이 ^^
옛 추억을 되살린 멋진 비행 조정기 잘 읽었네.
글 감사 하네.
산악인 취재를 위해 에베레스트도 다녀오고 할리데이인가 뭔가 타고 울산서 삼척도 올라오고
육군항공은 최고 비행고도가 얼마누
저양반은 26,000 Feet야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기분이드네 그려... 일동의 우리 부대 상공도 날아 다녔을텐데....글 잘 읽었네...
한번은 참모총장이 헬기로 우리부대 상공을 지나간다 해서 막사 지붕 청소 하는걸 본 기억이 나네...
어찌 그런 기발한 생각까지 했는지...중대 인사계는 정말 대단해...
정찰기를 타 본적이 있는데 비행순간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날도 갑짝스런 소나기때문에 착륙하는데 어려움이 많아
고생한 일이 기억이 나네 ....
뱅기 조종사 김수원동기 반갑다 ~~
우리는 뱅기뜨면 떠러 트리능게 목적였어 항공통제선 (뭐라카는데) T 탑 지나믄 무조건 교신불문, 보고불문,기종불문, 격추하라구해서
그때 진해 해군기지 뱅기 정비창에서 월북한 놈땜에~
자주오시게 뱅기부대 이바구 부탁하네~~
우리공병에서도 교육끝나고 항공으로갔던동기가 있는줄 처음알았네.
한때 공수부대로 차출된다는 괴소문에설마 나는 아니겠지하며 가슴졸였던 기억이 새롭네.
난 공병학교마치고 전주35사단에서 근무하여 전방사정은 잘 몰랐는데 동기들이 홈피에 올린글보고
전방상황을 감잡았고. 수원동기덕에 육군항공에대해 감 잡아가고있다오. 고마워.....
진앙아! 교수가 달래 교수냐? 옥하정도되어야교수가 되는겨~~~~~~~~~?
이런 머리로 지금까지 작장생활 하는 것을 보면 참 한심한 노릇이지요! 역시 공병하면 울산 군단장 해원이가 명쾌하게 답을 내렸지, 공병이 아니고 헌병이고, 헌병 뒤에는 엿장수가 따라 다닌다고 하~더~라~ !!! 재황이 환절기 건강관리 잘 하시구려~!
허언병이 아니고 빈병이라켔따 대단한너마 ㅉㅉㅉㅉ
공병은 학실히 전투병과다 너무 구박마라
보~포~기~공~통
기갑 다음 통신 전에
공수는 전투병과가 아니고 게릴라병과
공병 구박하면
수워니 문무대 입소 안할수도 있다고 그랬다
택배 배달이다!
얌마 말 그데로 총들고 전투하는 병꽈를 말하는긴데 삽들고 전투지원하는 빈병을 전투병꽈라 쿠는건 지원짜가 빠져뿌서 그렁기라 ㅋㅋㅋㅋㅋ
작전상 후퇴시 너그덜 다 토낄때까지 교량 교대옆에서 라면 끊여먹고 놀다가
모두 퇴각한 즉시 다시 말하면 발빠른 적의 선발대는 이미 우리보다 한발 더 나아가 있는 상태서적의 탱크가 다리 중간쯤 왔을때,
장전한 다이나마이트를 폭파 시키고 그때는 철수할 차량도 없어 발로 뛰어
토끼는데 국방부 전사에는 그렇케해서 살아 돌아온 빈병이 하나도 없단다
한마디로 야그해서 공병은 전쟁 후 평화가 찾아오면 국립묘지에서 동창회 한단다 알간
그리고 전세를 가다듬어, 진격할때는 너그덜 집결지에서 출동 전 소피보고 담배
한개피 태울때 우리는 너그덜 잘건너가라고 부교나 장간조립교 만드느라 분주
어떤때는 너무 빨리 목적지 도착하고 나면, 낙오한 적들과 라면을 같이 끓여 먹을때도 있다니까 ~~ㅋㅋㅋ
니 훼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책좀 봐라
로버트 조오단 공병 중위가 스페인 처녀 마리아와 뭣을 하는지
니말데로 빈병은 전투병꽈가 이이고 전투지원병꽈가 분명허당께 ㅉㅉㅉㅉㅉ
빈병은 전투 병과가 아이고, 전투 지원 병과가맞네!
대한민국에서 젤 우수사단에서 근무 했군 !!
근데 유사장은 군복입고 베낭은 메본겨? ^^
학창시절 그의 성격으로 보면 유격 교육장교 체질(?)이 아니었는데 ....
교육아라는 것은 앞에 "피"자가 붙으면 유격이나 공수나 힘들기는 마찬가지 여~
다만 있다면 정도 차이이지~
유재황 동기 얼굴은 모르지만 어쨋든 반갑소. 공병학교 졸업하고 자대 배치시 나도 2군으로 명령을 받았어요. 항공학교 훈련이 얼마나 힘들었던지....나는 비행훈련 받는다고 땀 뻘뻘 흘리며 기합받고 다니는데...... 그 당시 항공학교 건축공사가 있었는데 작업소대장으로 나와서 시원한 탠트 아래서 폼잡던..... 얼굴은 잘 기억이 안나지만.....공병학교 동기를 보고 내가 왜 여기서 이고생을 하고 있어야 하나? 하고 항공학교를 자퇴할려고 교관에게 이야기 했더니....교관 왈 " 너 지금 공병으로 가면 최전방에서 맨날 다이나마이트로 폭파 작업하다가 죽거나 병신된다고 해서....어쩔 수 없이 그대로 주저 앉았는데.....그만큼 항공학교 훈련이 힘들었기 때문이었슴. 앞으로 조종동기회 홈에 올린 글을 더러 올릴 계획입니다.
익사이트한 글의 흐름을 따라 영화의 한장면을 보듯이 읽었네....
나도 30사단 작전처 근무시 수색 비행장에서 L-19 탑승을 몇번 햇는데 쉬운일이 아니던데...ㅎㅎㅎ
앞으로 연재글 기대 하겟네...
내가 경복궁 근처 통의동에서 출생 하여 그곳에서 살었는데 늘 내집앞을
지나는 버스를 보면서 신임 소대장 영내 근무를 하느라 심적 고통(?)이
말이 아니었네...ㅎㅎㅎㅎ
김수원 동기가 홈피에 뜨니, 우리 홈피 수준이 화악~ 올라 간 것 같네~
땅에서만 기다가, 갑자기 하늘로 올라간 느낌?
근데.. 용어가 좀 헷갈린다~
나도 말년에 두어달, 사단 항공대 경비소대장으로 근무하기도 했었는데~
야튼, 너무~너무 재밌다아~
조종사 시절의 얘기를 계속 좀 올려 주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