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의 한류 이야기 63
문화 융성의 길 – ‘국악진흥법’에서 새 길을 찾다
박상진(철학박사,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명예교수, 前 서울시국악관현악단 단장)
우리나라의 전통음악은 일제 강점기의 문화말살정책에 의해 강제적으로 파괴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 때 ‘민초(民草)’들은 저항하였지만 속절없이 파괴당하였다. 그렇지만 우리 ‘민초’들은 그 압박에 굴하지 않고 은근과 끈기로써 견뎌내면서 우리 전통음악의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이어갔다. 그러나 일부 기득권의 음악은 일제의 보호를 받았다.
이 시절에는 발뒤꿈치의 굳은살을 하나하나 벗겨내듯, 농경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진입하는 문지방(門地枋)에 서있었다. 바로 문명사회로 넘어가는 전환점이었던 시기였다. 다시 말해서 농촌이 도시가 되는 크나큰 변화의 소용돌이 한가운데를 지나는 시기였다고 볼 수 있는데. 당연히 민초들은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 아주 어려운 시기였던 것이다.
또한, 서양음악이 유입되면서 우리 민초들의 대중음악인 민요, 판소리, 기악, 농악 등 전통음악도 서양 음악의 영향 속에 당연히 위축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면서 ‘민초’들의 대중음악도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하였다. 전통음악인 민요, 판소리, 기악 등을 바탕으로 한 전통음악들이 자연스럽게 서양음악 형식을 빌린 음악으로 새로이 창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서양음악 풍의 가곡과 소위 오늘날 트로트라고 불리는 대중가요가 그것이다.
그러면서, 현재 전통음악의 두 축이라 할 수 있는 정악과 민속음악의 명맥(命脈)이 유지되고 보존될 수 있었던 공로자는 그 당시의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와 민속음악가들인 ‘민초’들이었다.
이왕직아악부는 현재 국립국악원(國立國樂院)의 전신이다. 일제강점기 때인 1913년에 조선왕조 왕립기관의 아악대가 이왕직아악부로 개편되었다. 이왕직아악부의 주된 업무는 아악생(雅樂生)의 양성 및 궁중음악의 보존과 전승이었다. 이왕직아악부의 전통은 해방 직후 구왕궁아악부(舊王宮雅樂部)를 거쳐 국립국악원으로 전승되었다.
현재 국립국악원에는 국악연주단이 있는데, 종묘제례악 등 궁중음악을 담당하는 ‘정악단’, 궁중무용을 이어가는 ‘무용단’, 그리고 미래 국악을 창작하는 ‘창작악단’, 그리고 소수의 인원으로 성악과 기악 ‧ 타악 등을 담당하는 ‘민속악단’이라는 이름의 연주 단체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국립국악원 산하에는 남원에 설립된 ‘국립민속국악원’, 진도에 설립된 ‘남도국악원’, 부산에 설립된 ‘부산국립국악원’이 있어 각 지역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국악의 역사, 국악기 전시실, 국악체험실로 이루어진 국악박물관 및 악기 연구소가 있으며 800석 규모의 국악 전용공연장인 예악당을 비롯한 작은 규모의 소공연장이 두루 갖춰져 있다.
또 교원직무 연수, 청소년 강습, 가족 강좌, 국악 문화학교 등 내외국인들에게 체계적이고 다양한 연수와 강습 등 국악체험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국악연수관도 있다.
국악의 세계화를 위한 해외 국악 문화학교, 해외 전통예술인 초청 국악연수, 국제 국악워크숍 등의 사업도 시행하고 있다. 가족 국악강좌, 가족문화탐방, 어린이 여름방학 단소제작 특강, 유아 국악체험, 그리고 여름방학 청소년 국악 강좌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국립국악원 자료, 참조)
위의 산하단체, 전속단체 운영과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는데 있어서 국립국악원은 일 년에 약 1000억 원 이상의 예산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의 이왕직아악부 때부터 100년이 넘도록 제도권 안의 국가기관으로서 전통음악의 한 축을 담당했던 국립국악원은 우리나라 전통음악의 한 획을 그었을 뿐만 아니라 그 공로 또한 한국음악사에 기록될 것이다
한편, 2023년 7월 25일 ‘국악진흥법"이 공표되었다. 전통음악의 또 다른 한 축으로서의 민속음악을 일궈왔던 제도권 밖의 ’민초‘들은 ’국악진흥법‘이 공표되었다는 소식에 많은 기대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피해의식(被害意識)을 감추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민속음악계(民俗音樂界)는 지난 100년 동안 피해의식을 갖고 살아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국악진흥법‘이 공표됨으로써 앞으로 100년을 위한 미래 비전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하겠다.
민초들은 지난 100여 년 동안 오직 ‘온리 원(only one)’의 자세로 전통음악을 바탕으로 한 한류 문화의 확산과 음악문화의 정체성을 정립하는데 노력하였다. 그리고 대중성을 확보하며 국민의 전통문화 향유를 위해 평생을 바쳐왔다. 따라서 ‘국악진흥법’을 통해서 그런 노력들이 반영되고 구체화하기 위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문화융성의 새로운 길을 찾고, 지속 가능한 한류의 새로운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