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발밑을 살핀다

자유게시판

내 발밑을 살핀다

권영택 7 712
내 발밑을 살핀다 / 덕일 권영택
 
한 선승이 각명覺明선사에게 물었습니다. “달마께서 서쪽에서 오신 이유가 무엇이온지요?”
선사가 답했습니다. “네 발밑을 보라(조고각하照顧脚下).”
밖에서 구하려 애쓰지 말고 자기 본성을 살피라는 가르침입니다. 지금 자기가 서 있는 자리, 그 현실을 돌아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말은 우리 중생들에겐 이렇게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남 탓하기에 앞서 네 허물부터 살피라.”
등잔 밑이 어두워서일까요. 남의 허물은 잘 보이는데 내 허물에는 너무 관대합니다.
 
내가 태어난 해는 1954년입니다. 해방 후 9년, 육이오 한국전쟁이 끝난 다음 해 태어난 거지요. 철이 좀 들 무렵인 60년대 초까지만 해도 먹을 것, 입을 것 모든 것이 참 부족한 시절이었습니다. 초등학교 1,2학년쯤 무렵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처럼 찬바람이 쌩쌩 불어치는 겨울, 학교 가지 않는 방학엔 이불 뒤집어쓰고 방안에서만 몽그작거리다가 아침밥 짓기 위해 땐 군불 효과가 슬슬 사라지기 시작할 무렵인 열시쯤 밖으로 나옵니다. 땔감마저 부족했던 시대였던지라 저녁밥 지을 때까지는 집안 역시 춥습니다. 구舊장터 면사무소 창고가 할 일없는 아이들의 해바라기 장소로 안성맞춤입니다. 우선 창고 앞이 넓어서 놀기에 좋았습니다. 콜타르로 목재 벽을 검게 칠해 놓아 작은 햇살에도 쉽게 따뜻해졌기 때문입니다. 벽에 붙어 해바라기를 하다가 시시한 이야기도 하고 동네 형들로부터 주워들은 유행가나 구전가요를 함께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의미 없이 흥얼대었던 구전가요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지금도 정확히 생각나는 가사와 멜로디. 그만큼 많이 불렀었다는 증거입니다.
 
갓뗌, 구루마(수레의 일본 말) 동태(바퀴의 경상 ‧ 전라도 일부 지역 방언) 누가 돌렸나?
집에 와서 생각하니 내가 돌렸다
 
캇떼쿠루조토이…, 태평양전쟁 때 일본 군가 ‘이기고 돌아 가리라’는 비장한 각오를 밝힌, <노영露營(야영)의 노래>에서 따 온 가락이란 것은 아주 훗날에야 알았습니다. 누군가가 일본 군가에 비슷한 발음의 우리말로 옮겨 놓은 극히 평범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구전노래가 그렇듯 무언가 감춰진 뜻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원치 않은 전쟁에 두 번씩이나 참전했던 사람이 고향으로 돌아와 황폐화된 강토를 바라보면서 탄식하는 장면을 그려 봅시다.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을지도 모릅니다.
‘누구 때문에 우리가 이런 꼴을 당해야 했단 말인가?’
그는 곧 자답自答합니다.
‘그래, 누구의 탓도 아니야. 역사의 수레바퀴를 잘못 돌린 것은 우리들 자신이었어.’
그러고는 전선에서 불렀던 군가에 새로이 노랫말을 붙여 시니컬하게 흥얼거렸고, 이 노래가 널리 퍼져 동네 꼬마들의 입에 오르내렸다면…, 나의 지나친 유추인지도 모릅니다.
 
귀인歸因이론attribution theory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프리츠 하이더Heider Fritz 등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심리학 이론입니다. 행동의 결과, 특히 성공과 실패를 설명하는 방법에 관해 인지적으로 접근한 것으로서 결과의 원인[因]을 어디에 두느냐[歸]에 중점을 두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길을 걷다가 돌부리에 채여 넘어졌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결과를 놓고 ‘내가 조심성이 부족했어. 다음부턴 앞을 잘보고 걸어야지.’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대체 구청에선 뭐하는 거야? 길거리에 이런 장애물이 있으면 빨리 치워야 할 것 아냐!’하고 귀인을 남에게 두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비하에 가까운 자책自責도 좋지 않지만, 잘못된 결과를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 습성은 결코 자신에게도 사회에도 도움 되는 일이 아닙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그 원인이 타인에 의한 것일 수도 있지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가다 보면 결국 스스로에 귀착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때 참회懺悔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참회의 핵심은 그 원인을 모두 자신에게서 찾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회당대종사님은 다음과 같이 법문하십니다.
 
상대자의 저 허물은 내 허물의 그림자라.
상대 허물 낮과 같이 밝게 보는 사람은
내 허물은 밤과 같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고,
내 허물을 낮과 같이 밝게 보는 사람은
상대 허물 밤과 같이 어두워서 보지 못한다.
 
스스로를 되돌아보지 않고 남만 탓하는 사람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게 되고,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의 고마움을 잊게 되어 삶이 더 각박해집니다. 우리 모두가 내 탓으로 여기고 나부터 참회하여 내가 변하면 ‘너’가 변하고 ‘가정’이 변하고 ‘사회’가 변하고 ‘세계’가 변합니다.

Comments

정용상
내 발밑을 살피겠습니다.
서옥하
좋은 법문 감사드립니다! 날마다 좋은 날 되십시요!
임우순
다 내 잘못이 더 크지요...좋은 글 명심하면서 열심히 살겠습니다...
송재용
좋은 글 감사!......
엄기준
감사합니다~~~
윤윤병
 " 스스로에 귀착됨" " 스스로에 귀착됨" " 스스로에 귀착됨"
스스로 느끼도록 열심히 살겠습니다.감사합니다.
 
이승준
좋~으신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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