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의 한류 이야기 (83)<br>‘국악의 날’ 지정 – 악학궤범이 편찬된 9월 29일로
그동안 ‘국악의 날 지정을 위한 제언’을 약 5개월에 걸쳐서 연재하였다. 그 내용은 한마디로 ‘악학궤범을 편찬한 날로 정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몇 명의 국악인들이 국립국악원에서 공청회를 개최하였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여민락’이 기록된 날을 ‘국악의 날’로 정하자는 제안이 있었다고 한다. 그날은 6월 5일이라고 한다. 세종실록 권 116에 6월 5일로 기록되어 있다면서 음력이라면 그냥 양력으로 정해서 6월 5일로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세종실록 권 116에는 세종대왕이 "용비어천가, 여민락, 취화평, 취풍형을 공사간(公私間) 연향에 통용하도록 허락하시되 ~~”라는 기록 정도가 보인다. 견강부회(牽强附會)라고 보여진다.
‘여민락’은 세종 때 ‘용비어천가’의 한문가사를 부르는 성악곡으로 작곡되어져 연례악 등 행사음악으로 전승되고, 지금은 기악곡으로 남아 있는 대표적인 궁중음악이다. ‘악학궤범’에도 ‘여민락’의 용례에 대한 내용이 일부 수록되어 있다. 따라서 『악학궤범』 은 항공모함이고 ‘여민락’은 항공모함의 작은 부속물에 지나지 않을 만큼 그냥 곡의 한 종류이다.
국악신문에 보도된 바 있는 ‘국악의 날’ 지정을 위한 제안은 필자인 민속악계의 박상진(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명예교수, 학교법인 국악학원 이사장)과 정악계의 김우진(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前 서울대학교 국악과 교수)가 공동 제안한다.
‘국악의 날’ 제안 날짜는 9월 29일이다. 그 날짜를 제안한 배경은 9월 29일이 악학궤범을 편찬한 날짜로서 1493년 8월 상한(上澣)의 마지막 날을 양력(그레고리력)으로 환산한 날짜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훈민정음’을 반포한 날도 상한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한글날’도 상한의 마지막 날을 환산하여 10월 9일로 기념일을 지정한 것이다. ‘상한’이라는 말은 요즈음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상순(上旬)’, ‘중순(中旬)’, ‘하순(下旬)’ 중 ‘상순’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한국음악사에서, 삼국시대의 신라 향가와 백제가요, 고구려 음악은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조에 전해져 발전하였다. 그 음악은 『삼국사기』 , 『삼국유사』, 『고려사』 등에 악기와 노래가 전한다. 그 노래는 신라향가, 고려향가 그리고 고려가요라는 이름으로 진화되면서 「시용향악보」 에 그 악보와 가사가 전한다. 이렇게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 그리고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전하여진 악기와 노래, 그리고 춤은 조선조에 이르러 『악학궤범』에 종합적으로 집대성하게 된다. 따라서 『악학궤범』은 궁중음악과 민간음악을 두루 망라하여 편찬한 것으로 사료된다. 그러한 이유로 『악학궤범』을 편찬한 날을 ‘국악의 날’로 지정하는 것을 제안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악학궤범이 갖는 음악적 의의는 무엇일까.
1. 악학궤범은 그 당시 우리나라 음악(향악)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최초의 문헌이다. 악학궤범의 앞부분에 수록된 아악과 당악은 중국의 문헌을 인용한 것인데, 이것은 중국음악을 소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향악의 이론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세종 조에 시작된 향악의 정리가 성종 조에 이르러 악학궤범이라는 문헌에서 정립되어 결실을 맺었기 때문이다.
2. 악학궤범에는 궁중에서 사용하는 음악과 악기를 비롯하여, 민간의 음악과 악기 등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당시 영산회상과 미타찬 등과 같은 민간의 음악을 수용하고 있고, 초적과 퉁소 등 민간의 악기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악학궤범에는 조선 전기의 우리음악(향악)을 기록하기 위한 오음약보, 합자보 등 초기 정간보가 창안되어진 결실이 담겨 있다. 특히 향악기는 오음약보에 함께 기록되어 설명하고 있으며, 피리와 관련해서도 오음약보에 기록되어 설명하고 있다.
4. 악학궤범에는 향악의 악조(樂調) 즉, Key(키)의 기본음을 표현하는 악기를 대금과 거문고로써 정리하고 있다. 대금의 일지(一指) ‧ 이지(二指) ‧ 삼지 ‧ 횡지 ‧ 우조 ‧ 팔조 ‧ 막조, 그리고 거문고의 평조(낙시조)와 우조가 기본적으로 향악의 악조를 설명하도록 정해놓은 것이다.
5. 악학궤범에는 백제가요인 <정읍>과 고려가요인 <동동>, 신라의 <처용가> 등을 포함하고 있다. 학연화대처용무합설에서는 정읍이 포함되어 있으며, 아박무에서는 동동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악학궤범에는 궁중에서 사용하는 음악과 악기뿐만 아니라, 민간음악과 악기 등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향악을 기록한 오음약보 등 정간보 등이 수록되어 있다. 특히, 대금과 거문고를 통해서 악조 즉, Key의 기본음을 정하도록 했다는 것은 음악이론을 정립한 것으로 보여져 놀라울 따름이다 또한, 학연화대처용무합설에 정읍이, 아박무에서는 동동이 포함되어 궁중무용에 민속음악이 접목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악학궤범’은 이른바 갈라치기 없이 그 당시 모든 우리 전통예술을 흡수하고 포용하여 집대성한 최초의 문헌이자 최고의 문헌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야말로 훈민정음의 민본사상이 ‘악학궤범’을 통해서 발현된 것이다.
‘악학궤범’ 서문에 성현이 1493년 8월 상한(상순)에 서문을 작성했다는 기록이 있다. 서문을 끝내면서 바로 ‘악학궤범’이 편찬된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데, 1493년 8월 상한의 마지막 날인 10일을 그레고리력으로 환산하면 양력으로 9월 29일이 된다.
따라서, 9월 29일을 ‘국악의 날’로 지정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은 ‘균형적 교양’이고 그 교양의 큰 구성 요소는 역사에 대한 안목이다. 결단의 순간에 참조할 것은 역사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한다. 그러므로 9월 29일 날로 ‘국악의 날’이 지정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