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영의 생활칼럼 시즌 4] 제 4탄 - 신사복 차림에 상투 튼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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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영의 생활칼럼 시즌 4] 제 4탄 - 신사복 차림에 상투 튼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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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골촌놈으로 보수적인 환경에서 태어나서 연애 결혼 따위는 당시에 나의 결혼관과는 전혀 다른 우주 밖 멀리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당연히 중매 결혼이 항상 나의 결혼에 대한 주된 생각이었으며, 혹시나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배우자 가능성이 있는 상대를 소개받았다고 하더라도 마지막 결혼 결정은 부모가 해야 하는 것으로 철저하게 믿고 있었다. 또한 본인이 어떤 상대를 우연히 만나서 결혼을 생각하더라도 부모님들의 마지막 동의가 필수적이라고 철저히 정신 무장이 되어있었다. 아비로서 딸아이를 키워서 막상 결혼시키는 과정에서 영락없이 나의 머릿속 깊숙이 들어 있던 이러한 촌놈 생각으로 인하여 웃지 못할 일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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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보람양과 같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필자


딸아이 결혼식에는 아빠가 눈물을 흘린다는 점을 주위에서 딸자식을 결혼시켜본 대부분의 선배들이 종종 이야기해 주었다. 하지만 나의 경우 딸아이의 결혼식에는 오히려 너무나 기쁘기만 하였던 기억뿐이다. 단지 딸이 프로포즈를 장래의 남편으로부터 받는 과정에서 동서양의 문화차이로 딸과 나 사이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었다.


우선 딸래미가 결혼을 전제로 미국에서 사귀던 남자 친구를 부모에게 한번 보여주기 위하여 홍콩에 같이 오게 되었다. 첫 번째 대면에서, 나는 결혼에 대하여서는 두 사람의 인생이니 결코 부모가 이래라저래라하지 않겠다고 신식 부모로서의 점잖음을 부단하게 딸과 남자친구 앞에서 드러내었다. 그리고 부모가 절대 결혼 결정의 당사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니 딸과 상대방 남자친구는 기쁜 마음으로 이제는 두 사람이 언제라도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또한 나도 첫눈에 든든하고 예의 바른 예비사윗감에 대하여 마음속으로는 호감이 가는 상황이었다. 아직 혼사가 결정되지도 않았거니와 상대방의 가족 상황 등을 일절 물어보지 않고 있었던 교제 초창기였다. 나름대로 자기가 마음에 들어 하는 남자 친구이니, 먼저 부모에게 인사시키고 부모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 같이 홍콩에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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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뒷풀이로 왼쪽에 앉아 있는 보람양앞에서 카우보이 복장으로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는 필자의 사위~


딸과 남자친구 일행이 미국으로 돌아간 몇 개월 후의 어느 날 밤 12시경, 한참 야간작업으로 중국공장에서 바쁘게 일하고 있을 때 딸에게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전화기에서 딸아이는 잔뜩 흥분된 목소리로 조금전에 남자친구로부터 결혼하자는 프로포즈를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딸아이의 생각으론 아빠가 사위 될 사람을 몇 달 전에 만나서 그토록 흡족해하셨으니 어쩌면 이상할 것이 전혀 없는 대화 내용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서 기어코 웃지 못할 문화충격을 받고 말았다. 그래서 딸아이가 기뻐서 아빠에게 이야기하는 모든 말들이 한순간 정전이 되듯 잘 들리지 않았음은 물론이었다. 조금 전 결혼 프로포즈로 반지도 받았다고 좋아하는 딸아이의 목소리만 메아리쳤다! 


축하한다고 형식적으로 이야기하고는 힘없이 전화를 끊고 한동안 공장 안을 멍멍한 상태로 돌아다녔다. 평상시와는 전혀 다른 나의 행동에 나 자신도 많이 놀라게 되었다.


결혼하겠다면 분명히 아빠에게 미리 전화를 걸어서 상의할 거라고 기대했던 딸아이였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마지막 일언반구의 상의도 없이 이렇게 갑자기 통보를 아비에게 하다니? 


이때까지 매일 하루가 멀다고 오늘은 친구와 무얼 하고 무엇이 좋았고, 아빠는 무엇을 하고 있냐는 등, 딸과 나 사이에는 한 치의 빈틈도 없고 이 세상 누구와도 공유치 않고 둘만 간직하는 비밀이 있는 사이였는데... 갑자기 아빠보다도 더욱 가까운 어떤 남자가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고?


그리고 딸이 결혼과 같은 인생의 대사만큼은 10초 전이라도 결정전에 당연히 아빠에게 미리 알려주리라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아니, 먼저 자기네들이 결정하고 나에게 통보하다니?

1분도 못 참고 결정 후에 알려주다니...


하여튼 딸아이의 결혼 결정과 관련하여 나의 마음속에는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야릇한 서운한 감정이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로 한동안 남아있었다. 또한 나와 가장 가까이 있었던 딸아이가 이제 나를 떠나가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되니 괜히 우울해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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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LA에서 필자의 가족과 보람양 가족이 함께 여름휴가를 즐기는 모습~


몇 년 후 브라질 출장에서 만난 박 선배는 일찍이 연애 결혼의 신봉자였다. 고등학교 때 알게 된 여고생 친구가 부모를 따라서 브라질로 이민을 떠난 후 박 선배 혼자서 밀항선을 타고 남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돌아서 브라질까지 약 1개월 이상을 죽을 고비 끝에 도착하여 여자친구인 현재의 부인과 해후한 후, 양가 부모님들의 승낙도 없이 결혼하였다는 영화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 화제의 결혼을 해서 아직도 신혼 같았던 두 분과 저녁에 소주 한 잔 기울이며 마음속에 감추어 놓았던 딸래미 프로포즈 사건을 이야기했다. 박 선배 부부는 박장대소하시며 나를 '동양 촌놈'이라고 놀리고 다음에 아들이 결혼할 때는 절대로 부모로서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생각을 버리라고 하셨다. 


사실 서양에서는 남자가 결혼하고픈 상대에게 비밀리에 예물을 준비하여 갑작스럽게 상대방에게 결혼반지(Surprise Gift)를 건네면서 결혼해 달라고 프로포즈한다는 것을 나는 영화에서도 보고 잘 알고 있었지만, 우리 딸과는 상관없는 일로 여겨왔었다.


뒤늦은 박 선배의 충고는 너무나 재미있는 일화로 항상 나에게 남아있다. 프로포즈 받은 딸래미가 우리 사위에게 아래와 같이 말하기를 기다렸던 우스꽝스러운 나는, 아직도 조선시대에 살고 있는 동양 제일의 촌놈이라는 박 선배의 핀잔을 듣고서야 기나긴 우울의 터널에서 탈출하게 되었다. 


"잠깐만 기다려! 우리 아빠한테 물어보고 프로포즈 반지 받는 걸 결정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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