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영 회장의 생활칼럼 시즌2] 6탄- 인도네시아 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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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영 회장의 생활칼럼 시즌2] 6탄- 인도네시아 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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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영 회장의 생활칼럼 시즌2] 6탄- 인도네시아 파견 

유원건설 최효석 회장 수행비서로 국내와 해외를 수행하던 어느 날 퇴근길에 명동의 코지코너 커피집에서 커피 한 잔을 같이 한 후 집으로 가자고 회장님께서 제안을 하셨다. 수행비서와 커피를 단둘이 마시자고 하시니 무슨 일인지 궁금증이 발생하였지만 어떠한 짐작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커피집에 도착하여 하얀 모시옷을 입고 미소로 반겨주는 중년이 넘은 고운 모습의 여성과 마주 보고 합석하게 되었다. 그날따라 회장님은 거의 말씀이 없으셨고, 이상하게도 이 아주머니는 유독 나에게만 많은 대화를 유도하여 약 30분간 두 사람의 대화만 주로 이루어졌다. 예전에 사석에서 회장님이 나에게 좋은 신붓감을 소개해주시겠다고 종종 농담을 하신 적이 있어서 생년월일 등을 물어보기도 하니 앞에 앉아있는 아주머니가 혹시 중매쟁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무튼 약 30분 정도의 대화를 나눈 후에 코지코너의 신비한 아주머니가 나에 관한 이야기를 줄줄 풀어놓기 시작하였다. 김비서는 고향을 떠나 멀리 타향에 있어야 좋을 운명이고 철강석, 나무, 불과 같이 있어야 좋고, 독립적인 부대의 장이 되어야지 남의 밑에서 일하면 좋지 않을 관상이라고 일방적인 사주풀이를 들려주었다. 상당히 괴상한 상황이라 느끼며 집으로 돌아왔지만, 궁금증이 발동하여 다음 날 친한 비서들끼리 만나는 장소에서 타 그룹 비서들에게 코지코너 아주머니의 정체를 묻게 되었다. 당시에 유명한 역술인으로 주로 대한민국의 유명인사들이 자주 드나들며 알고 지내는 분인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유원건설이 중동지역에서 성공을 거두며 승승장구할 무렵에 사업 다각화를 기치로 자원사업에 대한 원대한 꿈을 가지고 인도네시아에도 진출하게 되었다. 1983년 인도네시아의 산림개발을 위하여 합작법인 'Pt Yourim Sari'를 설립하여 본격적인 가동을 시작하였다. 최회장과 같이 역술인을 만난 후 한참 시간이 흐른 어느 날 회사로부터 손용상 비서실장을 통하여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지사 근무를 명령받았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신혼 상태였지만 현지 사정이 아주 어렵게 진행되고 있어서 관리자가 당장 필요하였고, 회사의 명령은 신혼생활보다도 우선하는 전투명령과 같은 일이었다. 며칠 뒤 자카르타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따라서 그때부터 식인종과 게릴라가 출몰하고 있었던 이리안자야 현장을 방문하고 인도네시아 생활을 시작하였다.

 

3695730634_0kXvFnVr_83a4967658dbf51b78d5f664195aff879052d9a1.png이리안자야 뎀타 제재공장 앞에서

수도 자카르타 지사에서 새벽 4시 30분에 출발한 비행기를 칼리만탄(우중빤탄)과 슐라웨이스(비약)에서 갈아타고 이리안자야주(자야뿌라)에 오후 5시 30분에 도착하는 힘겨운 현장 방문이었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지도상에서 볼 수 있듯이 동서로 가장 긴 나라 중 하나이며 이리안자야는 식인종이 당시에 존재하였다고 신문 지상에 보도되는 오지 중의 한 곳이었고, 이들이 자야뿌라와 뎀타 사이의 정글 지역에 살고 있었다. 가끔씩 출몰하여 외지인들과 현지인들을 무참히 사살하고 이리안자야의 독립을 요구하는 게릴라들이 모든 직원들에게는 가장 커다란 위협이었고, 반정부 활동 게릴라군과 정부군의 교전이 계속되었다. 그 당시 싱가포르 지사로 아내를 동반한  파견을 은근히 기대했던 나는 엉뚱한 곳에서 험난한 해외 생활을 시작했던 것이다. 특히 신혼 허니문 베이비를 임신하고 있었던 아내를 문화촌 위 달동네의 단칸방에 남겨두고 떠나온 나는 마음이 편치 않은 생활의 연속이었다. 나는 인도네시아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현지인과의 소통을 위하여 주경야독을 하며 우선 현지어를 습득해야 했다. 그때 열심히 배운 현지어를 아직까지도 조금은 기억하고 있다.

 

많은 중장비가 현장에 있었고 수시로 직원들이 정글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어서 자카르타에서 근무하더라도 항상 긴장하며 근무하는 전시 상황 같은 분위기였다. 고국에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단칸방에서 남편의 전화만 기다리며 심한 입덧까지 하고 지냈던 아내에게는 본의 아니게 크나큰 고통을 주었던 시기였다. 당시에는 통신망이 너무 좋지 않아서 수도 자카르타에 있을 때만 비싼 전화를 할 수 있었고 이리안자야 현장에 들어가면 외부와의 연락은 완전히 차단되었다. 군대에서 사용하는 일종의 무전기 같은 통신수단(SSB)으로만 연락이 가능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었다. 큰마음 먹고 고생하는 와이프에게 비싼 개인 비용의 국제전화를 할 때면 아기자기한 사랑의 대화보다는 어머니 안부만 먼저 물어보는 봉건적인 타입의 한심한 신랑이 아내에게는 너무나 야속하고 참을 수 없었던 상황이었을 것이다.

 

3695730634_1c2MIh0b_3db52ea20d2770246dca00d60544528e630d9812.png당시에 산속에서 살고 있었던 원주민 부족 모습 

가끔씩 자카르타 지사에서 현장이 있는 이리인자야를 다녀온 후면 며칠씩 진이 빠진 멍한 상태로 지냈고, 비행기를 세 번씩 바꿔 타고 갔다 오면 파김치가 되었다. 비행기도 옛날 선진국에서 사용 후 폐기처분 전의 낡은 비행기 같아서 이륙과 착륙할 때는 모든 동체가 흔들리고 소음으로 금방 추락할 것 같았다. 비행기 탑승 때마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고소공포증이 이때부터 조금씩 발병하여 몇 년 후에는 의사로부터 처방을 받아 약물치료를 하기 시작하였다. 가끔씩 고열(약 40도) 상태의 이름 모를 풍토병과 말라리아로 인하여 며칠씩 식음을 전폐하고 시장바닥처럼 위생 상태가 좋지 못했던 병원에서 지내기도 했다.

 

3695730634_XbwKzHIR_e6422c6ca70f89eb0b7dbebf19512a5a23add0e0.png인도네시아 남양목 앞에서

설상가상으로 당초에 가족을 동반하도록 해주겠다던 회사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가족의 출국을 허락지 않았다. 당시 종합상사 외는 지사 근무자의 가족 동반이 되지 않았던 시절이며 해외에 나간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특혜로 간주되던 시절이었다. 따라서 나의 가족 동반 근무를 회사에 강력히 요구할 수 없었고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런 연유로 아내에게 신혼 초 크나큰 어려움을 주어서 나이 들어서 지금까지도 아내에게 엄청난 빚쟁이가 되었다.

 

직장보다 가정이 먼저인 요즘의 직장인에게는 상상이 안 되는 옛날 이야기일 것이다.


< 다음 호에서 7탄 [싱가포르, 가족과의 재회]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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